"살아서 종말의 날 봤다"…카불공항 테러 생존자가 전한 참상

"발 밑에서 땅 잡아당기는 줄…시신 날아다녀"
폭발로 인한 부상자·시신 하수구에 방치된 상황
배후 자처한 IS…美 "탈레반과 협력해 대응 중"
  • 등록 2021-08-27 오전 8:30:28

    수정 2021-08-27 오전 8:30:28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폭발이 일어난 후 부상당한 아프간인들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폭발 당시의 모습을 전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특별이민비자를 가진 국제개발그룹 전직 직원인 한 남성은 이날 새벽부터 카불 공항에서 수천명과 함께 수송기 중 한 대에 올라타길 희망했다.

10시간째 카불 공항 외곽의 애비 게이트 근처에서 줄을 서던 중, 오후 5시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 남성은 “마치 누군가가 발 밑에서 땅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며 “잠시 내 고막이 터져 청각을 잃은 줄 알았다”고 폭발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숨진 사람들의 신체 일부가 토네이도 속 쓰레기 봉지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봤다”며 “시신과 신체 일부, 노약자와 부상당한 남성, 여성, 아이들이 폭발 현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봤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사는 동안에는 종말의 날을 볼 수 없지만 오늘 나는 그 날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됐다. 해당 남성이 국제단체와 협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탈레반에 보복당할 것을 우려해서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20년만에 아프간을 장악한 뒤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카불은 아수라장이다. 폭발에서 생존한 이 남성은 “오늘 이 문제에 대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신과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이들도 없었다”며 “시체와 부상자들은 거리에 그대로 있거나 하수구에 던져졌다. 그 안에는 피가 물처럼 흘렀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신체적으로 나는 괜찮지만 오늘 폭발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탈레반도 카불 공항 테러에 관해 입장을 밝혔다. 모하마드 나임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카불 공항에서 대규모 집합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외국군에 경고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대규모 집합으로 인해 적절한 보안 조치가 취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프간 보건당국에 따르면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을 포함해 최소 90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다쳤다. 테러 직후에 이슬람국가(IS)는 배후를 자처했다.

미 국방부는 테러 상황 대응하기 위해 탈레반과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케네스 맥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이슬람국가아프간분파(ISKP)의 공격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탈레반과 협력하고 있다”며 “비행장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탈레반에 연락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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