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위기, 가로수길 매장이 이미 알려줬다?

업계 관계자 "중국 내 확장 제동에 한국으로 눈 돌려"
팀 쿡 CEO 만든 SCM 최적화 전략도 점차 차질 생겨
중국 덕분에 성공한 애플, 이제 중국의 대안 찾아야
  • 등록 2019-01-05 오전 10:08:23

    수정 2019-01-05 오전 10:08:23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 서울 강남의 ‘핫플레이스’ 가로수길에 국내 첫 애플스토어(애플 직영 공식 매장)가 열린다는 소식은, 사실은 애플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초였다. 애플이 중국내 애플스토어 확장을 일정기간 이상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최근 애플이 중국 내 판매 부진에 따라 실적 전망을 하향조정하는 ‘위기’가 어떻게 전개돼왔나 짚어보기 위함이다.

가로수길 애플스토어, 중국내 아이폰 부진 신호탄이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주주들에 보낸 서신에서 지난해 4분기(2019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을 기존(890억~930억달러) 대비 최대 10% 가까이 낮춘 840억달러로 조정했다. 애플은 뉴욕증시의 ‘대장주’ 격인데다, 실적 감소 요인으로 중국의 경기둔화와 중국 내 미국기업 대상 불매운동을 꼽으면서 충격파는 더 컸다. 이로 인해 미국은 물론 한국, 유럽 등 세계 증시 전체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애플 내부에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가로수길 애플스토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앞서 애플은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애플스토어 설립을 추진해왔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특히 2013년을 전후한 시기 애플은 한국법인인 애플코리아와 국내에서 △임대료가 (애플의 예산을 고려할 때)아주 높지 않으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등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부지를 물색한 끝에 강남이나 명동 중 한 곳에 매장을 내기로 하고 가계약까지 마쳤다.

하지만 막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건물주와 계약이 틀어졌고, 그 상황에서 애플은 한국 대신 일본과 중국 매장을 확충하기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그렇게 한국 내 애플스토어는 미뤄졌다. 당시 기자가 만난 한 관계자는 “애플이 중국에서 시들해질 때쯤 한국에 눈을 돌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후 애플은 특히 중국에서 애플스토어를 공격적으로 확장했는데, 2016년 여름을 기점으로 ‘중국내 매장 확대가 둔화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어진 소식이 애플의 한국어 회화 가능 전문인력 채용 공고였고, 약 1년 전인 지난해 초 가로수길 매장 개소로 이어졌다.

가로수길 매장을 열 당시 그 자리에는 안젤라 아렌트 애플스토어 책임자도 있었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 CEO 자리를 박차고 나온, 애플스토어 고급화 전략의 총괄 지휘자다. 안타깝게도 그가 서울에 왔다는 건, 중국 시장에서 애플의 부진이 본격화되는 조짐이었던 것이다.

특히 애플에게 있어 뼈아픈 점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의 존재감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불매운동 때문이 아니더라도, 샤오미로 대표되는 중국 브랜드가 오히려 더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미 7.7% 점유율의 5위(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로 내려앉은 점은 애플 자체의 부진으로 봐야한다는게 시장의 반응이다. 애플 스스로도 서한에서 아이폰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군은 성장했다는 점을 밝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 시장은 점차 고가(프리미엄) 기종을 대신해 실속있는 중저가로 중심추가 이동하고 있다. 애플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고, 이 때문에 2013년 아이폰5C를 비롯해 2016년 아이폰SE 등 중가형 제품을 내놓는 노력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 스스로 고가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해치기 어렵다는 지금까지의 기조는 현재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쿡 CEO가 보낸 서한을 보면, 애플에게 또 다른 위기 요인이 있다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바로 그간 최대 강점이었던 ‘공급망관리’(SCM)에서 효율적·유기적인 연계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한에는 중국 시장 내 부진 외에도 △아이폰XS 등 전년도 최신 제품 출시시기의 변화에 따른 교체주기 변화 여파 △주요 신제품들의 공급 제한 등을 꼽고 있다.

팀 쿡 애플 CEO의 트위터 계정 프로필 사진
쿡 CEO는 전설적인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시절 공급망(Supply Chain) 관리 전문가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애플은 제품을 설계만 하고 생산은 위주 업체에 위탁하는 형태로 생산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펴왔고, 여기에 크게 기여한 것이 단짝이나 다름없던 폭스콘(홍하이)이다. 폭스콘은 대만에 본사가 있지만 중국 대륙의 생산기지에서 아이폰을 ‘저렴한 가격에’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애플은 시장 수요 예측을 넘어 아예 수요 자체를 직접 주도하던 시장내 입지를 보여왔다. 덕분에 잡스 시절 애플은 아이폰으로 IT·전자 업계의 일대 혁신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했고, 쿡 CEO도 이를 이어받아 성장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2015년을 전후해 이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페가트론 등 다른 생산 파트너를 찾고 이 과정에서 다시 불량이 발생해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애플의 완벽함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는, 지금의 쿡 CEO를 있게 해준 기반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그가 바야흐로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쿡 CEO는 서한 말미에서 1300억달러(146조원)의 순현금자산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당장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유연하고 창조적인 조직문화가 이 위기를 타개하고 더 나은 성과를 향후 가져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미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과 출시에 자신감이 있고 열정적이라는 점”이라며 “애플은 지구상의 다른 어떤 기업과도 다르게 혁신을 이끌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은 그에게 그 말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라는 생산기지로 인정받은 쿡 CEO는 이제 중국에서의 부진을 어떻게 만회할 지 답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중국 베이징의 애플스토어 매장에서 한 방문자가 제품을 이용해보고 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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