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위험을 사고 파는 위험한 게임

  • 등록 2006-11-20 오후 12:20:00

    수정 2006-11-20 오후 12:20:00

[이데일리 하상주 칼럼니스트] 집에 불이 날 위험이나 자동차 사고가 날 위험을 보험회사에 팔아버리면 세상은 더 안전해 지는가? 화재나 자동차 사고의 숫자가 줄어들지는 않지만 이런 사건으로 생활이 어려워 지는 일에서는 벗어날 것이다.

그럼 금융기관이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기업이 부도날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면 금융기관은 돈을 돌려 받지 못할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투자가가 달러 자산에 투자한 후 달러 환율이 떨어질 위험을 보험에 든다면 이 투자가는 달러 환율이 떨어져서 입게 될 투자 손실(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이처럼 금융상품 투자에서 올 수 있는 투자 위험을 막아주는 금융상품(*대부분이 파생상품이다)의 발행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업 부도 위험을 대신해 주는 CDS(Credit Default Swap)이다.

기업 부도 위험을 대신해 주는 상품이 많이 팔린다는 것을 바로 기업의 부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올해 미국 기업의 회사채 발행액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파생상품의 거래량이 많아지고, 투자가들이 파생상품을 통해서 투자 또는 대출 위험을 보험에 들고 있다면 이것은 금융기관 전체에 위험을 줄이는 것일까? 아니다. 위험은 이전될 뿐이지 줄어들지 않는다. 단지 위험이 골고루 분산된다면 총량으로 위험은 줄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줄어드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위험이 골고루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공간적으로 집중된다면 어떻게 될까?

경험이 많은 투자가들이 달러의 대외 가치가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달러 가치는 2002~2004년까지 떨어진 후 미국의 대외경상적자의 확대에서 불구하고 2005년에는 올라갔고, 올해 들어와서도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투자가들은 달러 자산에 계속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과의 거래에서 흑자를 보는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계속해서 달러 자산을 사 주고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달러 가치 하락에서 오는 손실을 파생상품을 통해서 보험에 들고 있다. 이 보험 상품의 가격은 매우 싸다. 달러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보험 상품을 판 금융기관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기 때문에 서로 경쟁적으로 보험 상품을 팔려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이 보험 역할을 하므로 파생상품은 미국 금융시장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연 그럴까? 기업 부도나 달러 가치 하락에서 오는 손실을 대신해 주는 파생상품은 화재나 자동차 사고와 같은 사건에서 오는 손해를 대신해주는 보험상품과 그 성격이 서로 다르다. 기본적으로 보험 상품이 보험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건 또는 사고가 우연히 일어나야 하고 사건들 사이에 서로 관련성이 없어야 한다. 화재가 시공간적으로 널리 분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금융상품에 일어나는 사건 또는 사고는 화재나 자동차 사고처럼 우연히 일어나거나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않다. 기업의 신용은 주기적으로 좋아졌다 나빠졌다 한다. 즉 서로 몰려서 다닌다. 달러 가격의 상승 하락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금융 상품들의 가격 상승과 하락은 서로 영향을 주어서 하락이나 상승을 더욱 강화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가뭄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홍수를 별로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강 가까이 전망이 좋은 곳에 집을 짓는다. 즉 신용이 낮은 기업에도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홍수가 와서 입을 손실은 이를 대신해 주는 보험상품을 아주 싼 값으로 산다. 보험 상품의 값이 싸면 금융기관도 돈을 쉽게 빌려주고, 기업들도 돈을 빌려서 이 돈으로 다른 기업도 산다. 지금 유럽과 미국에는 기업 인수 합병의 열풍이 불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금융상품 투자에서 오는 손실은 우연히 일어나거나 서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손실을 대신해 주는 보험상품 즉 파생상품이 생겼다고 금융시장의 위험이 분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분산된다. 그러나 결국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시간적으로 위험이 집중되어 있다.

만약 하늘에 비구름이 끼면 강 가까이 집을 지은 사람들은 서로 먼저 집을 팔려고 할 것이다. 집값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홍수가 와서 입을 손실을 대신해준다면서 보험 상품을 판 금융기관은 결코 그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동시에 홍수 보험 상품의 값은 높이 올라갈 것이다.

누구는 내년에 비구름이 없는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누구는 내년에는 비구름이 끼일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홍수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 위험의 가격이 너무 싸며, 그 결과로 신용이 과잉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비구름이 끼일 것이고, 잘못하면 홍수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홍수가 주는 위험을 파생상품으로 피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파생상품은 오히려 이 위험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금융시장에 나타날 비구름이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하다.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이 글을 쓴 하 대표는 <영업보고서로 보는 좋은 회사 나쁜 회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 http://www.haclass.com으로 가면 다른 글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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