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파동' 속 "불만 당연하다"는 이재명…당 안팎선 "총선 진다" 위기...

현역 의원 평가 최하위권 "이재명 보복" 주장
정체불명 여론조사에 '비명' 의원 컷오프
'집안싸움' 우려 커지는데 李 상황인식은 물음표
  • 등록 2024-02-24 오전 11:00:00

    수정 2024-02-24 오전 11:00:00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이재명 대표는 (총선에서) 이기는 것엔 관심 없는 것 같다. 오로지 공천만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이 심상치 않다. 지난 21대 총선과 달리 현역 의원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속해 경선 시 페널티를 적용받게 된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하위 평가자임을 공개하며 반발하고 있다. ‘비명(非이재명)계’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지역구에서 정체 불명의 여론조사가 진행됐고,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구를 전략공천 대상 지역(전략지역)으로 선정하며 사실상의 공천 배제(컷오프)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 비해 공천 잡음이 심하다는 것이 당 안팎의 일관된 평가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은 “불평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다른 상황 인식을 보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역 의원 하위 평가는 이재명의 보복?…“내 편 넣겠다”뿐

현역 의원 하위 평가 내용에 대한 의혹 제기는 지난 19일 4선의 국회부의장 김영주 의원이 시작했다. 김 의원은 곧장 탈당을 선언하며 “지금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사당(私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어 박용진·송갑석·전해철·박영순·김한정·설훈 의원 등이 하위 평가자임을 밝히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현역 의원 평가 항목인 △의정활동 △기여활동 △공약 이행 △지역활동에서 정량지표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은데 최하위권에 속한 이유는 정성평가에 이 대표 의중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설훈 의원은 23일 “그간 이 대표 체제에 쓴소리를 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보복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그럼 뭐라고 표현할까요?”라고 되물었다.

현역 의원 컷오프도 단행됐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서울 마포갑(노웅래)·동작을(이수진), 경기 의정부을(김민철)·광명을(양기대)을 전략지역구로 정하며 이들 의원들을 사실상 컷오프했다.

이수진 의원은 즉각 탈당을 선언했다. 향후 거취를 밝히지 않았으나 무소속 출마 가능성은 열어뒀다. 노웅래 의원은 공관위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22일부터 당대표 회의실에 침낭을 깔고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 의원은 “옛날에 계파정치를 할 때도 나처럼 계파정치 안 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경선 경쟁력 있는 사람만큼은 감안했던 것”이라며 “(지금은) ‘우리 편 집어넣겠다’ 이거 밖에 없으니 이것은 당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문고리’ 넘지 못한 위기 의식, 원내대표만 동동

의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데에는 당 지도부의 설명 부족과 미온적 대처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농성을 하러 찾아온 노 의원을 만나지 않다가 다음날(23일)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면담을 가졌다. 노 의원이 답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던 시간, 그를 달랜 건 당의 2인자인 홍익표 원내대표였다.

‘친문(親문재인)계’이자 ‘비명계’인 홍영표 의원 지역구에선 홍 의원을 제외한 여론조사가 시행됐다. 비명계 송갑석 의원 역시 같은 일을 겪었다. 민주당은 21일 의원총회에서 지도부의 해명을 요구했고 조정식 사무총장은 처음엔 당이 실시한 여론조사임을 부인하다 추후 인정했다. 의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홍익표 원내대표는 문제의 여론조사 업체는 배제하고 여론조사의 진상조사 등 조치를 약속했다.

홍 원내대표가 탈당 러시를 막고,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이재명 대표는 ‘이 정도 불만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이례적으로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을 자처해 “경쟁과정에서는 본인의 생각과 타인의 평가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불평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점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이전보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심해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데일리에 “지지율 추이가 좋지 않다.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가 상황의 심각성을 축소해 보는 데에는 측근 그룹의 ‘심기 경호’가 작용하고 있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문고리’를 쥔 측근들이 공천 관련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공천 실무를 맡은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 의원들의 불만이 대표에게 전혀 전달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표는 의원총회에 불참하고, 원내대표만 나와서 설명하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총선 질 것 같다. 정말 위험한 수준”이라며 “당 지도부에서 정무 판단이 그렇게 안되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불만을 가진 의원들의 말처럼 ‘사천’이 진행될 경우, 경선에서 당원과 국민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에서 과반 넘게 지지를 받아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 후보가 하위 평가자 페널티를 받아 결국 지지율이 낮은 후보가 승리하면 본선인 총선에서 민심이 민주당에 우호적일 수 있겠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천 파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민주당은 ‘친문(親문재인)계’ 학살 논란이 촉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서울 중·성동구 갑 공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위 평가자들의 경선 결과 발표와 재심 신청까지 줄줄이 남아 있어 민주당의 공천 잡음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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