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카페] 싸이월드는 왜 망했는가

성급한 유료화 시도했던 '프리챌' 창업자, 싸이월드 인수
이후 커뮤니티 본질보다 수익원 발굴에 '열중'→싸이월드 부활 실기
  • 등록 2019-10-19 오전 10:00:00

    수정 2019-10-20 오후 7:57:26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싸이월드 사진첩 사진만이라도 살릴 수 있게 해주세요.’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싸이월드 폐쇄 가능성에 무관심한 듯 하다. 그러나 일부 사용자들은 사진만이라도 건질 수 있게 서버를 열어달라고 했다. 사용자들이 백업을 받을 수 있는 서버 용량과 운영 기간을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싸이월드는 퇴락했다.

싸이월드가 어렵게 된 이유는 여럿 있다. 모바일 시대 도래를 간과한 것이 가장 크지만 ‘싸이월드 고유의 존재 이유’를 잃은 게 가장 크다. ‘사이좋은 사람들끼리 정을 나누는 공간을 제공한다’라는 이유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프리챌 부러웠던 싸이월드

2000년 인터넷 커뮤니티를 사용했던 사람들은 ‘다음카페’와 ‘프리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한때 ‘아이러브스쿨’과 같은 동창회 커뮤니티가 인기를 끌었지만 다음카페와 프리챌이 범용적으로 쓰였다. PC통신 시대 수많은 동호회가 이 둘 중 하나의 커뮤니티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카페는 한메일 사용자를 기반으로 했다. 한메일이 포털 서비스 ‘다음’으로 진화하면서 다음카페 성장세는 가파랐다. 당시만 해도 네이버보다 다음이었다.

프리챌은 순수 커뮤니티 서비스로 이름이 높았다. 깔끔한 디자인과 사용성이 돋보였다. 세이클럽이나 아이러브스쿨 등 다른 커뮤니티 서비스와 경쟁했지만, 20대 이상 사용자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다. 특히 많은 동호회가 프리챌을 사용했다. 사용자 수는 다음카페가 많았지만 서비스 질은 프리챌이 우위였다. 아기자기한 아바타, 디자인은 다른 커뮤니티 서비스와 비교해봐도 돋보일 정도였다.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싸이월드는 무명에 가까웠다. 서비스 존망을 우려할 정도였다. 커뮤니티 서비스 2위로 잘나가던 프리챌을 부러워할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 프리챌 화면
무명이었던 싸이월드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프리챌의 자충수’였다. 프리챌은 커뮤니티 유료화를 시도했다. 그때가 2001년. 사용자 수는 급속히 늘었지만 마땅한 수익원이 없었던 이유가 컸다.

‘인터넷은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던 터라, 프리챌의 유료화는 사용자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 동호회의 이탈이 줄을 이었다. 상당수는 다음카페에, 이중 일부는 싸이월드로 갔다. 당시 싸이월드는 ‘클럽’이라고 해서 프리챌과 비슷한 콘셉트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주력으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니홈피는 단순한 클럽 프로필 서비스였다.)

프리챌이 헛발질하는 동안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가 히트를 쳤다. 1인미디어 열풍과 함께 미니홈피에 사용자들이 몰려들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청소년과 여성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사진첩, 갤러리, 미니홈피, 다이어리 등을 순차적으로 오픈하면서 미니홈피는 명실상부한 국내 1위 1인미디어가 됐다.

프리챌은 어땠을까. 사용자들의 이탈로 유료화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수익에 대한 집착은 접지 않았다. 본질이었던 커뮤니티 서비스보다는 게임에 집중했다. 도박성이 강한 ‘고포류(고스톱, 포커류)’ 게임을 내세웠다.

수익을 올리기 위한 무리수도 강행했다. 사용자들이 프리챌에 들어가는 순간 10초 정도 강제로 광고를 보게 하는 식이었다. 수익을 위해 인터넷 서비스의 금기를 스스로 어겼던 것이다. ‘사용자들에게 불편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금기였다.

프리챌은 서비스 본질을 잃은 채 수익성을 찾다 표류했다. 2013년 서비스를 종료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창업자는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아야 했다.

싸이월드에서 되풀이된 프리챌의 역사

잘나가는 기업도 30년 이상 버티기 힘들다. 아무리 잘되던 인터넷 서비스도 3년 이상 가기 쉽지 않다. 변화의 속도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터넷 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지, 그 서비스가 전세계를 지배할지 알 수가 없다.

웹 시대 10년 전성기를 보냈던 싸이월드는 2010년대 모바일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초고속인터넷이 가져왔던 웹 커뮤니티 질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만든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질서로 재편됐다. 모바일에서 사용하기에 싸이월드는 구식이었다.

모회사였던 SK커뮤니케이션즈와의 결별(2014년) 후 싸이월드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사이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취지였다.

싸이월드는 모바일 시대에 맞춰 구식이고 무거웠던 미니홈피를 없앴다. 전면 모바일 서비스로 개편했다. 그러나 15년 가까이 유지해왔던 서비스 체제를 한꺼번에 바꾸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인력이 부족했고 자금이 모자랐다. 군소 모바일 서비스로 떨어졌다.

싸이월드는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서비스 본질을 살릴 수 있을 만한 주체가 후보였다. 여러 IT업체가 싸이월드 주인이 되기 위해 문의했다. 이중 하나가 미국 소재 동영상 커뮤니티 기업 ‘에어라이브’였다.

에어라이브의 전신은 ‘짱라이브’였다. 아프리카TV처럼 영상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였다. 미국에서 투자금을 받았다. 모바일 영상 시대 싸이월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줄 것만 같았다. 싸이월드의 새 주인이 됐다. 두 회사는 합병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가지 간과된 사실이 있었다. 에어라이브의 창업자가 바로 프리챌의 창업자였다. 사업을 개발하기보다 수익에 골몰해 프리챌 서비스를 몰락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후 싸이월드는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동영상 채팅 등 동영상 커뮤니티 서비스에 집중했다. 유튜브와 아프리카TV 등 기존 서비스가 굳건하게 자리잡은 상태에서 헛된 시도였다. 너무 구식이었다.

그 다음 뉴스 서비스를 시도했다. 삼성으로부터 50억원도 투자금으로 끌어왔다. 일류급 개발자들을 영입했다. 창업자 등 임원진의 친인척이 또 입사했다. 투자금은 금새 소진됐다. 다시 직원들의 임금이 체불됐다.

암호화폐 열풍이 불자 ‘싸이클링’을 출범시켰다. 사실상 실체가 없는 암호화폐였다. 해외 투자를 받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이 와중에 싸이월드 서비스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렸다.

내부 자금은 소진됐다. 서비스 개발과 개선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뉴스 콘텐츠를 제공했던 언론사들로부터는 자산 가압류를 당했다. 임금체불을 버티다 못한 직원들이 줄퇴사를 했다. 이중 일부는 창업자이자 현 싸이월드 대표를 고소했다.

싸이월드 사내에 붙은 이른바 ‘빨간딱지’. 뉴스 콘텐츠 대가를 지급 못해 가압류를 모 언론사로부터 가압류를 받은 것.
서버를 관리할 인원까지 이탈하게 됐다. 통신사도 서비스를 끊었다. 서버 업로드를 하려면 과거 데이터를 손으로 지워야 했다. 동네 커뮤니티 서비스보다도 못한 지경이 됐다.

싸이월드는 서비스 본질을 잃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래저래 이용만 됐을 뿐이다. 회생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제로에 가깝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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