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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티라노 사우르스 머리뼈와 같은 형상으로 공룡 코부터 목까지 들쭉날쭉 이어지는 1700㎞의 해안선(인도 전체 해안선 길이 7000㎞로 구자라트가 4분의 1 차지)을 뒤쪽의 후두부가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수에즈 운하 이전 길고 긴 아프리카 동남해안을 따라 올라온 서양 교역선이 해풍에 의지해 가장 먼저 닻을 내린 곳이 구자라트 주 해안선과 파키스탄남부 카라치 항구였다.
고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도아대륙의 향신료, 직물 등 수많은 물산과 재화가 인근 페르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으로 연결되는 핵심 통로 역할을 해 왔고 Tata, Reliance, Adani 등 인도 핵심, 주요기업도 이곳에 뿌리를 두고 성장해 지금도 구라자트의 사업 역량을 강화시키고 있다.
마르와리와 함께 인도 2대 상인집단으로 이야기되는 ‘구자리티(Gujarati) 상인’에 대해 필자가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쓰지’를 않는다. 이점에서는 구자라트 북쪽 척박한 Rajasthan 사막을 배경으로 성장한 Marwari에는 미치지는 못하다는 것이 속설이지만, Gujarati도 마르와리 못지않게 일단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안 나오는 것’, 그리고 ‘일단 확신이 서면 몰빵 할 정도의 공격적 투자’로 유명하다.
자신들은 수많은 외국 출장 시 늘 일행끼리 호텔방을 같이 쓰고, 여행용 가방의 반 정도는 인도음식이라는 이야기에 더 한번 놀랬다. 결국은 방을 같이 쓰면서 이들의 사고와 생활양식을 배우고 한 가족 같이 된 감사의 시간이었지만 이와같이 구자라티들은 ‘검약’이, 그리고 ‘실용’이 뼈에 그리고 피에 각인되어 있다.
권위의식이 없고, 실용이 몸에 배어 있으며 허례가 없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고, 거래에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처음부터 ‘Sir’(귀하·선생·각하 등의 경칭)란 명칭을 거리낌 없이 쓴다. 해서 팔자에 없는 ‘Sir’ 소리를 수없이 듣는다.
암다바드 소재 고급 호텔에 드나드는 현지 부인네들 옷차림은 일부 2세대, 3세대를 예외로 한다면 일상복 그대로다. 자신의 부를 외부로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다. 그래서 복장과 치장으로 그 사람의 부자 여부를 추측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인도 주식시장 거래 유통자금의 70%가 구자라티’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현지인도 많이 만난다.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과 사업을 선호하고 수반된 리스크(위헙)를 기꺼이 지려한다.
8개월 전 이곳 정착 시 주택알선 과정에서 그 끈질김과 철저함에 반한 부동산 중개회사의 사회초년병 Mr. Ankit은 벌써 자신의 가문 전통에 따라 배달전문 인도식당을 차려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하루 5시간만 자는 신들린 사업가로 변신 중이다. 무역관 초기 개설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어 현재도 많이 의지하고 있는 무역관 현지 직원도 아프리카 콩고에 NRI(재외인도인·Non Resident Indian)로 정착, 인도산 생활용품 수입판매점을 확장하고 있는 처남의 합류 제안이 있다는 전언에 코트라 무역관이 본인 장래에 어떻게 도움을 줄지를 설득하느라 마음 졸이고 있다.
현재 미국에만 4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NRI 중 해외여행, 거주 중 들르게 되는 지역모텔, 호텔 주인 열에 여덟이 구라자트 지주계급 출신의 Patel(현 구자라트 인구의 12.5%를 차지하는 지주계급 출신으로 인도 근대화 과정에서 상인, 사업가 정치가, 해외이주 사업가 및 전문직종 종사자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집단) 가문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이런 검약과 실용, 리스크를 즐기고 현장에 순응하는 전통과 DNA가 ‘장사, 사업을 배우려면 구자라트로 오고’, ‘구자라트주가 인도상인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다.
△서울대 법학과 △연세대경영대학원 경제학과 △브랜다이스대 국제무역발전론 △코트라 투자유치팀 △통상전략팀 △해외진출협력처 해외진출컨설팅팀장 △산업자원협력처 정부조달팀장 △방콕무역관장 △통상지원실 FTA지원팀장 △해외시장정보실 빅데이터팀장 △뉴델리무역관 △아메다바드무역관 △암다바드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