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대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환희를 상징하는 장면은 5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볼뽀뽀를 건네는 장면이었습니다. 유력 외신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화제였습니다. 부끄러움에 다음날 ‘이불킥’을 날렸다는 안희정은 ‘충남주사’라는 애칭까지 얻었습니다. 대선 이후 열흘하고 이틀 정도가 흘렀습니다. 물론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체적으로 합격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역시 문재인이야”라면서 환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상 밖으로 너무너무 잘해서 오히려 걱정”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해왔던 반대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가는지 두고 보겠지만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며 아직까지는 허니문 모드에 가깝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상에는 ‘문재인’을 화두로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어느 페친의 글이 너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약하면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시절에는 ‘버락 오바마’라는 젊은 멋쟁이를 대통령으로 둔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 부러웠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19대 대통령 취임 이후 며칠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불쌍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갖은 기행과 무리한 통치로 최근 탄핵이 거론될 만큼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반면 대통령 문재인은 모든 국민에게 정권교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너무 잘한다” 국민·바른·정의당의 이색 칭찬 vs “탄핵사유 해당” 한국당 원색 비난
대통령 문재인의 열흘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기대 이상입니다. 문재인 지지자와 민주당의 반응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색적인 것은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비(非)민주당에서도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 정부 초반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정치세력은 오직 자유한국당뿐입니다.
“솔직한 말씀으로 굉장히 잘하는 것 같다. 너무 잘해서 무섭다. 젊은 참모들과 커피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바랐지만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이혜훈 바른정당 의원, 5월 17일 TBS라디오 인터뷰 중)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첫 번째 맞이하는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들이 모두 제창으로 부른 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 출범하고 초기에 보여준 모습, 정말 칭찬을 아끼지 않겠다.”(김용태 바른정당 의원, 5월 18일 YTN라디오 인터뷰 중)
“취임 11일 문재인 대통령 너무 잘 하십니다. 지금은 문재인 태풍이 붑니다. 태풍은 강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풍은 나라를 위해 오래 가면 좋겠습니다. 이런 때는 박수를 칩시다.”(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 5월 21일 페이스북 중)
“조현옥, 피우진에 이어 강경화. 내각 여성 30%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었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데 강박관념이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백이 사실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의 진전이다. 쌍수로 환영한다.”(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5월 21일 페이스북 중)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탁월한 선택에 감동까지 주는군요. 강경화 외교장관 내정자는 북한 인권 문제에 큰 도움 주신 분입니다. 야당이라도 잘하는 것 잘했다고 박수쳐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하태경 바른정당 의원, 5월 21일 페이스북 중)
한국당은 여전히 비판 모드입니다. 홍준표 전 대선후보와 정우택 원대대표가 앞장섰습니다.
“새 정부가 인사와 정책에서 여러 우려를 낳는 것은 독재와 독선을 부추기는 박수 소리에만 도취한 게 아닌지.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을 무시하는 독선 정치를 한다면 한국당은 견제와 비판을 넘어 강력한 저항을 불사할 것이다.”(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 5월 15일 비대위 회의 중)
“청와대에서 위법한 절차로 중앙지검장 인사를 하면서 최순실 사건을 재수사하라고 한 것은 미국 같으면 사법방해로 탄핵사유에 해당된다. 트럼프가 FBI국장을 부당 해임하여 탄핵의 위기에 처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정권도 얼마가지 않아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5월 20일 페이스북 중)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일주일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 행보는 앞의 대통령과 완전히 대비된다. 관저에 틀어박혀 사람도 안 만나고, 대면보고도 안 받던 전직 대통령을 보던 국민들은 대통령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 홍준표 후보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할 일은 오대산 자락에서라도 모여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다.”(박찬종 변호사, 5월 16일 미디어오늘 인터뷰 중)
“정치인이 한강에 빠지면 구해야 한다”…세계 어디서나 정치인은 ‘동네북’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과정에서는 ‘문모닝’에서 ‘문나이트’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극심한 네거티브에 시달렸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인은 원래 ‘동네북’입니다. 어쩔 때는 화풀이 대상으로 술안주로 오르내립니다. 존경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정치인 주변에는 조롱과 멸시가 난무합니다. 그것은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다를 바 없습니다. 3김 시대 이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마추어 정부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취임 초부터 탄핵 이야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531만여표 차이의 사상 초유의 압승에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인맥 중용으로 비웃음을 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87년 대선 이후 51.6%의 득표를 얻은 첫 과반 대통령이었지만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시작으로 이어진 잇단 인사 참사로 출범 초부터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사실 정치인은 세계 어디서나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정치인과 성직자가 한강에 동시에 빠지면 정치인을 먼저 구해야 한다.” 왜일까요? 정치인을 구하지 않으면 한강물이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선진국이라고 일컫는 유럽이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정치인들은 동네북입니다. 독일에도 비슷한 유머가 있습니다. “정치인을 납치했던 사람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정치인을 다시 풀어줄 것이다.” ‘똘레랑스’의 나라로 우리가 부러워하는 정치 선진국 프랑스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3월초 “차라리 오바마가 출마하라”는 이상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수도 파리에는 오바마의 대선구호였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문장이 담긴 오바마 포스터가 등장했습니다. 프랑스 국적도 아닌 전직 미국 대통령의 프랑스 대선출마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바마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만큼 프랑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들의 실망과 분노가 반영된 것입니다.
|
-5월 10일 : 국무총리 이낙연·靑 비서실장 임종석 + 사저 출근 시민들과 셀카
-5월 11일 : 민정수석 조국·인사수석 조현옥 + 靑참모진과 커피 산책
-5월 12일 :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지시 + 靑직원들과 구내식당 오찬
-5월 13일 : 대선 때 마크맨들과 등산 + 세월호 기사에 “마음 아프다” 댓글
-5월 15일 : 세월호참사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 지시 + 靑관저서 걸어서 첫 출근
-5월 16일 : 6월말 한미정상회담 조기 개최 합의 + 양정철의 아름다운 퇴장
-5월 17일 : 김상조·피우진 파격 기용 + ‘돈봉투 만찬’ 감찰 지시
-5월 18일 : 계엄군에 아버지 잃은 5.18 유족과 포옹 +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5월 19일 : ‘강골검사’ 윤석열 파격 발탁+ “혹시 질문 있습니까?” 언론과 소통
-5월 20일 : 공식일정 없이 취임 10일 만에 정국구상 겸한 첫 휴식
-5월 21일 : 삼고초려로 靑정책실장에 장하성 영입 + 22일 휴가 사용
새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파격와 소통의 연속입니다. 정권 출범 초기에 으레 나타나는 찬사라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조기 대선 여파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어서 예상됐던 혼란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인사는 역대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참신함을 선사했습니다. 소통은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끌었습니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잘 나타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전망은 긍정평가가 압도적입니다. 한국갤럽의 지난 16∼18일 자체 조사(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1%포인트p)에 따르면 국민 87%가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직무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과거 대통령 취임 2주차 기준 같은 조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79%, 박근혜 전 대통령 71%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문 대통령은 직전 박 전 대통령과 다른 모습도 선보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을 직접 발표할 때였습니다. 당초 공지된 사항은 문 대통령이 인선발표만 진행하고 일문일답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진행한다는 것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혹시 질문 있습니까”라며 말해 순간 춘추관이 술렁였습니다. 기자회견과 질의응답을 꺼려했던 박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또 박근혜 정부 하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과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문제가 문 대통령의 지시로 단번에 해결되자 많은 사람들은 기쁨과 더불어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도대체 그동안은 왜 못했던 거지?”
‘친문 패권주의’ 불식시킨 문재인 ‘포석은 성공적…승부는 지금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친문 패권주의’라는 극심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친문 패권주의를 그대로 적용해본다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인사는 대통령과 가까운 친문계가 독식하고 소통 역시 내부 이너서클에서만 이뤄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친문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2선후퇴가 상징하듯이 상대적인 손해를 봤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인사(人事)는 말그대로 만사(萬事)입니다. 문 대통령이 잘한다는 평가의 핵심은 인사입니다. 탕평, 파격, 지역안배, 여성발탁이 핵심 키워드입니다. 친문패권은 사실 찾아보기 힘듭니다.
비문계인 이낙연 전남지사를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에,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의 임종석 전 의원을 청와대 비서실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가까웠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발탁한 게 대표적입니다. 청와대 대변인에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가까운 박수현 전 민주당 의원을 기용했습니다. 또 보수정권에서 중용됐던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능력 위주의 실용적 인선에도 무게를 뒀습니다.
새 정부는 아직 가야할 길이 험난합니다. 이제 고작 출범 열흘이 조금 지났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포석 단계입니다. 실리도 적잖이 얻었고 세력 또한 두텁습니다. 포석단계에서 유리하다고 바둑에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중반전이 되면 반상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때로는 패싸움이 끝도없이 벌어지고 대마의 사활이 걸린 큰 전투도 이어질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중반 이후 집계산에서 우세를 유지해도 종반 끝내기에서 악수 한 수면 모두 허사입니다. 바둑 애호가라는 문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진짜 승부는 정말 이제부터입니다.
사족으로 한 마디만 붙이면 곧 미국 친구로부터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일 때는 대한민국이 불쌍해보였다. 그런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내몰리니 이제 대한민국이 너무 부러워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