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글로벌 대유행) 이후 최악의 수준까지 추락했던 경제지표들이 하나둘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이젠 그 여파가 다 사라진 것 아닌가`하는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와 낙관론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의 V자형 반등의 기폭제가 된 게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우려스러운 대목을 끄집어 내는 것이 투자자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을 순 있겠지만, 행여나 하는 노파심에서 최근 불안 징후를 보이고 있는 미국 모기지(우리의 주택담보대출)시장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듯합니다.
많이들 들어보셨겠지만,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에서도 규제가 강화되면서 위기의 주범이 됐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체 모기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미미해졌고, 그 때문에 미국 모기지는 시장을 논할 때 그리 관심있는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물론 기존 실업수당에 국가가 추가로 지원하는 600달러의 수당까지 챙기긴 하지만) 그로 인해 소득이 줄다보니 따박따박 갚아 나가던 모기지를 상환할 여력이 사라진 가계가 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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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며칠 전 나온 데이터가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주택시장 분석업체인 코어로직(CoreLogic)이 발표한 대출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모기지 연체율이 6.1%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 2016년 1월 이후 근 4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모기지 대출을 받은 100명 중 최소 6명 이상이 연체되거나 아예 압류절차를 밟고 있다는 얘깁니다. 코어로직은 미국 내 전체 모기지의 4분의3을 커버하기 때문에 매우 신뢰도 높은 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아직 5월 공식 집계는 안 나왔지만, 미국 모기지 대출기관인 블랙나이트가 공개한 자체 5월 연체율은 7.76%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보다 세분화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그래야만 모기지 연체가 어떤 상황까지 진전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인데요.
4월말 기준으로 매달 내는 대출 상환금을 30일 미만으로 연체하는 비율은 3.4%였습니다.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9년 이래 역대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코어로직은 이 30일 미만 연체를 `신규 연체(new delinquency)`라고 부릅니다. 이제 막 연체에 발을 내디뎠다는 뜻인데요. 이 수치는 불과 1년 전인 작년 4월엔 0.7%였구요. 주택시장 버블 붕괴가 한창이었던 지난 2008년 11월에도 2%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줄어든 소득을 기본적인 생계 유지를 쓰느라 모기지를 제 때 상환하지 못하는 게 한 두 달 남짓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정적`이나 `심각` 연체까지 진행되진 않았지만, 59일까지의 연체율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건 그 자체로 본격적인 연체 대란을 예고하는 선행지표로 의미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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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 단계에서 모기지 연체가 추가로 더 악화할 것인가, 아니면 이 정도 반짝 영향만 주고 사라질 것인가는 코로나19의 추가 확산여부에 달려 있다고 하겠는데요. 그러나 16일(현지시간)에도 미국내 확진자가 하루 7만7000여명을 기록하며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이라 낙관보다는 우려에 무게를 둘 수밖엔 없어 보이긴 합니다.
지역별 연체율이 이런 추론을 강화시켜주고 있습니다. 실제 코로나19가 창궐했던 미국 북동부와 현재 가장 크게 확산되고 있는 남부지역에서 모기지 연체률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뉴욕주의 모기지 연체율이 1년새 4.7%포인트나 올라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고, 뉴저지주가 4.6%포인트 올랐습니다. 네바다와 플로리다주가 그 뒤를 이어 각각 4.5%포인트, 4.0%포인트 높아졌습니다.
물론 이 연체율에는 약간의 노이즈가 끼어 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연방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2조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긴급지원자금을 담은 케어스액트(CARES Act·코로나 지원구제법)를 발효했는데요. 이 중 일자리를 잃고 모기지를 상환하기 어려운 가구를 돕기 위해 적격 주택 소유자(페이메이와 프레디맥 등 정부기관 보증을 받은 모기지를 가진 소유자)에 한해 최장 12개월까지 모기지 상환을 유예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 자신이 부적격자인지 몰라 상환 유예를 신청한 뒤 은행에 모기지를 제 때 상환하지 않은 사람이 꽤나 많다보니 부득이하게 연체자로 잡힌 케이스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정부 지원만 없었다면 곧바로 연체자로 가야 할 사람들이 통계에서 누락됐을 수도 있습니다.
또다른 변수는 집값 그 자체입니다. 모기지의 담보가 되는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집값대비 대출금 비율을 나타내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가 올라가기 때문이죠. 미국에서는 은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상 80%까지 LTV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즉, 100만달러(원화 약 12억원)에 집을 살 때 LTV를 80%로 적용한다면, 초기에 자기 돈으로 직접 지불하는 다운페이먼트(Downpayment)를 20만달러로 하고 나머지 80만달러를 모기지 대출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집값이 갑자기 80만달러로 떨어질 경우 LTV 80%를 맞추기 위해서는 모기지 80만달러 중 16만달러(=80만달러*0.8)를 갚아야만 합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연체와 압류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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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0여년 전 금융위기 때와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순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금융위기 떄와 달리 지금은 각종 규제로 인해 전체 모기지 중 신용도가 극히 낮은 서브프라임 비율이 미미한데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의 경기 활황에 주택 소유자들의 에쿼티 비율(=집값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LTV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뜻입니다.
최근 미국 주택시장 관련지표도 대체로 양호한 편입니다. 주택매매나 신규착공 등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향해 반등하고 있고, 연준의 제로금리 정책 덕에 지난주 30년만기 모기지금리는 2.98%를 기록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3% 아래로 내려갔습니다.(미국은 모기지가 주로 고정금리 대출이라 이렇게 금리가 낮아질 때 저금리로 갈아타는 리파이낸싱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주택 공급은 줄고 있습니다. 또다른 주택시장 조사기관인 질로우(Zillow)에 따르면 7월 첫째주 현재 미국 내 매각 가능 주택수는 1년 전에 비해 22%나 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체율이 더 높아져 주택 압류가 늘어나면 매각 주택수가 다시 늘어날 수 있구요. 주택가격이 떨어질 경우 처분하려는 사람이 늘고 매수자가 줄어드는 건 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에쿼티 비율 하락으로 인해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처분을 서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기지에서 촉발되는 주택시장 불안은 이제 살아나려고 하는 미국경제에 큰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전미주택건축업자협회(NAHB)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주택시장 기여는 통상 15~18%에 이릅니다. 주거용 주택투자가 GDP의 3~5% 수준이고, 그외 낡은 집을 보수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등의 주택서비스 관련 소비지출이 12~13% 수준입니다. 그나마 미국 의회가 추가적인 재정부양책을 논의하고 있으니 모기지 상환 유예 조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대선이라는 변수로 인해 이 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우려스러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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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은행권의 수익 악화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미국 내 최대 모기지 대출은행인 웰스파고는 이미 지난 5월부터 모기지 제공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하면서 모기지 집행을 줄이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요, 이는 모기지 연체율 상승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비단 웰스파고뿐 아니라 JP모건체이스나 씨티그룹 등 소매금융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2분기에 대손충당금을 크게 쌓으며 모기지 부실화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쨌든 대손충당금 확대는 순이익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은행주에는 부정적 이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