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25.런던·파리·서울…대도시의 오염된 공기

  • 등록 2018-01-23 오전 8:04:54

    수정 2018-01-23 오전 8:04:54

안개 낀 런던(사진=이민정)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몇 년 전 겨울에 프랑스 파리에 갔었는데 파리에 머물렀던 5일 가운데 3일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무료였습니다.

알고 보니 공기오염 정도가 파리시 기준을 초과할 경우 대중교통을 무료화해 시민들이 자신의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촉구하는 방식으로 대기 오염 정도를 완화해보자는 파리시의 정책 때문이었지요.

자주 이용했던 지하철의 경우 어느 역이나 모든 개찰구가 열려 있어 승객들은 지하철을 타러 들어갈 때나, 지하철에서 하차해 지상으로 나올 때 모두 티켓이나 카드로 된 승차권을 이용할 필요없이 그냥 자유롭게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 있었습니다.

파리 지하철과 버스 1회권은 1.9유로(약 2500원)입니다. 10개 묶음으로 사면 14.9유로고요. 대중교통이 무료다 보니 파리 시내 여기저기를 더욱 활발하게 다녀야겠다는 다짐은 숙소 밖으로 발을 내딛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더군요.

당장 조금만 걸어도 눈과 목이 따가웠습니다. 하늘도 뿌옇고 앞도 뿌옇고 신발을 내려다봐도 먼지 같은 게 뿌옇게 쌓여 있었고요.

한국에서 황사나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될 경우 사용하는 마스크를 사서 착용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거리의 파리 시민 가운데 마스크를 낀 사람이 없어 괜히 착용하면 유별난 외국인으로 볼까 봐 두르고 있던 스카프로 대충 입과 코를 가리고 지하철역으로 이동해야했죠.

일정도 박물관이나 공연 관람 등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정으로 수정했습니다. 괜히 공기 나쁜 날 센느 강변이나 에펠탑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셔 몸이 상할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코를 풀면 거무스름한 먼지가 묻어나올 정도로 공기가 나쁜 날의 파리는 도시 특유의 분위기와 여행의 즐거움을 확실히 반감시키더군요. 그때 다짐했던 것이 앞으로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기온의 높낮이나 비나 눈 같은 기상상황 뿐만 아니라 스모그 같은 대기오염 정도도 꼭 확인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런던에 있으면서 특별히 공기가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든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어디든 조금만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공원이든 작은 공원이든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도심에 공원이 많다 보니 서울보다는 공기가 좋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었고요. 유독 공기가 안 좋다고 느낄 때가 있긴 한데 바로 런던 지하철을 이용할때죠.

지하철 모양이 긴 튜브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튜브’로 불리는 런던 지하철은 버스 요금보다는 비싸지만 노선이 도시를 촘촘히 연결하고 있어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는 런던 지하철은 땅속 깊이 철로를 깔고 노후화된 열차가 많아 공기청정 시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보면 목이 따가워지면서 공기가 안 좋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죠. 이 때문에 지하철 역내 곳곳에 “튜브를 탈 때 물을 들고 타세요.” 또는 “속이 울렁거리거나 몸이 안 좋은 걸 느낄 때는 역무원에게 연락하세요.”라는 포스터나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튜브를 탈 때만 탁한 공기를 견디면 된다면 그럭저럭 참을 만 하겠는데 문제는 런던의 공기가 전반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런던 이브닝스탠더드 보도를 보면 작년 런던 대기 모니터링 지역 가운데 48개 지역의 대기 중 평균 이산화질소 농도가 유럽연합(EU) 기준을 최대 2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죠.

작년 1월에는 한 때 중국 베이징보다 공기가 안 좋은 날도 있었습니다. 런던 대기오염의 원인으로는 대기오염을 겪는 세계 여느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디젤 차량이 내뿜는 매연, 공장 가동 시 발생하는 오염물질 등이 꼽히죠.

더러운 공기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면 당연히 호흡기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등 건강에도 해롭고 빈번한 두통, 구역질 등을 동반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나쁜 공기 때문에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내부에만 있다 보면 운동량이 부족해 무기력감 등 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최근 영국 국회에서도 특히 수도인 런던의 공기가 나빠지고 있으며 시민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 효과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습니다. 런던 시 차원에서 공기정화를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매연을 많이 내뿜는 차량에 벌금을 매기고, 장기적으로는 디젤 차량의 도입을 중단하고, 옥스퍼드 스트릿, 푸트니 하이 스트릿 등 붐비는 노선에 수소연료로 움직이는 2층버스 등을 도입하는 등 갖은 방안을 강구하고는 있지만 아직 크게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는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의 경제 기여도가 큽니다. 그런데 더러운 먼지로 둘러싸인 파리, 공기 나쁜 뿌연 하늘의 런던이라면 해외 여행객들의 재방문 의사가 뚝 떨어지지 않을까요.

한국의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만든 문화 콘텐츠로 어필해 해외관광객을 불러들였는데 뿌연 서울의 하늘이 그들을 맞이한다면 한국 체험의 즐거움이 단번에 줄어들고 다시는 오고 싶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깨끗한 공기 만들기는 많은 비용과 국민, 기업,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장기적인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오염된 공기 원인이 국내와 더불어 외부에서 유발된 것이라면 초국가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깨끗한 관광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도시들이 깨끗한 공기 만들기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해봅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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