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한미 FTA 비준안 처리 이후 한껏 몸을 낮추며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FTA 비준 무효화를 주장한 시위대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한 것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부담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다.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한 마당에 예산안 만큼은 여야 합의 처리가 필수적이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처리 시한이 내달 2일이라는 점에서 마냥 기다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늦어도 내달 9일 정기국회 종료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의 강경 기류가 언제 풀릴 지는 미지수다. 물론 민주당이 끝까지 예산안 처리를 거부할 명분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온다.
정갑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27일 “예산안 처리 목표 시한을 (법정기한인 12월2일이 아닌) 내달 9일 정기국회 회기 내로 완화하더라도 남겨진 시간은 촉박하다”며 “시간 부족에 따른 부실 심사와 책임은 국회에 있지만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야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FTA 비준 원천 무효’를 위한 장외 투쟁과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국회 등원 사이에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변수는 FTA 장외 투쟁이 지난 2008년 촛불 집회와 같이 광범위한 여론의 지지를 얻느냐 여부다. 장외 투쟁 동력의 확산 여부에 따라 민주당의 입장도 엇갈릴 수 있다.
이용섭 대변인은 27일 “한나라당이 의회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국회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야권통합 파트너인 시민사회와 한국노총 등의 FTA 반대 기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섣부른 등원론이 나올 경우 ‘독자 전대 vs 통합 전대’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야권 통합의 로드맵 자체가 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미 FTA 장외 투쟁과 예산안 문제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예산안 합의 처리를 전제 조건으로 등원이 필요하다는 것. 내년 4월 총선을 감안, 소속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 등을 챙겨야 한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18대 국회 이후 매번 한나라당 단독으로 예산안이 처리되면서 지역 예산 확보 등의 문제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