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겨울의 틈…詩, 의성에서 마주하다

`붉은 전율` 3만여 그루 산수유마을
마늘 천지 재래시장, 국내 유일 성냥공장 볼거리
  • 등록 2011-11-25 오후 12:20:00

    수정 2011-12-21 오전 7:12:56

[의성(경북)=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참 오래된 얘기가 됐다. 한때는 집안이 잘 일어나라고 집들이 갈 때면 `팔각성냥`을 꼭 챙겨가던 시절이 있었다. 석유곤로의 심지에 불을 붙이던 어머니의 발간 손끝이라든지, 어릴 적 허리춤 깊숙이 숨겨나온 성냥갑을 꺼내 성냥개비 긋던 가슴 철렁했던 기억까지.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틱, 틱, 치익 치지직. 둔탁하지 못한 소리를 내던 손끝의 성냥개비는 쉽게 부러져 버렸다. 맨 처음 내 손으로 불을 만들었던 `첫` 경험. 홀라당 집 태워먹을 거냐는 호된 꾸지람에도, 또 누군가에겐 흉터 자국으로 남았을 성냥의 날카로운 기억은 생생한 듯 뭉클하게 남아 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나 조금 늦게, 느닷없이 온다. 가을과 겨울의 틈에 찾은 경북 의성은 둘러보기도 전에 이미 아련해졌다. 붉디붉은 산수유길과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 재래시장 허리 굽은 할머니의 주름살은 열일곱 감성을 불러오는 몇 안 되는 여행지 중 하나다.  
▲붉디붉다. 봄에는 샛노란 꽃을 틔웠다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이 맘 때면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산수유마을 전체는 발갛게 달아오른 소녀의 볼처럼 화사해진다. 3만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만들어낸 이국적 정취가 물씬 나는 산수유길을 한 관광객이 천천히 걷고 있다.


◇추억이 방울방울...국내유일 성냥공장

`성냥공장`하면 `인천 성냥공장`이 떠오를 법도 하지만 의성 성광성냥 공장은 전국에 남은 유일한 `풀 세트` 성냥공장이다.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의성향교 앞에 있는 성광(城光) 성냥공장이 그것. 성광성냥은 1954년 설립됐다. 사람으로 치면 벌써 환갑을 앞둔 셈이다.

성냥이 대접받던 1970년대를 전후해 당시 전국에는 300여개가 넘는 성냥공장이 성업했다. 하지만 일회용 라이터와 중국산 성냥에 밀리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곳만 남았다.
▲국내에 단 하나 뿐인 성광성냥 공장 사장 손진국(75) 씨가 카메라 앞에서 멋적게 미소짓고 있다. 뒤로 보이는 기계는 성냥제조기의 한 부분. 성냥알에 자동으로 유황을 묻히고 건조시키는 기계다. 일이 줄어든 공장이 오랜만에 돌아가는 기계소리로 요란하다.
한창 잘 나갈 때는 250명이 넘는 인부들이 일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9명만 일을 할 뿐이다.   공장 한편에 자리한 운영되고 있지 않는 허름한 구내식당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지금은 식당이나 다방 판촉용 상품으로 겨우 명맥을 잇고 있고 기계를 세워 놓아야 하는 날이 많다.

손진국 씨(75)가 50년 넘게 이끌어오다 최근에 둘째 아들인 손학익 상무(44)에게 경영을 맡겼다. 손 씨는 "포플러나무를 잘라 성냥까치를 만들고, 유황 묻히고, 성냥 곽 인쇄해 포장까지 전 과정을 하는 공장은 이곳 뿐"이라고 말했다.

손 사장은 공장 곳곳을 보수하고 기계를 정비해 `성냥공장 체험관`을 설립하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어릴 적 성냥과 함께 한 시절의 추억을 사람들과 나누길 원한다. 참고로 성광성냥공장(054-833-2440)을 방문하기 전 미리 의성군 새마을문화과(054-830-6355)에 문의하면 공장시설을 안내받고 성냥 제조과정을 들을 수 있다.

◇마늘 천지...의성 재래시장
▲시장 마늘가게 한 컨 앞마루에서 마늘을 손질하는 할머니들의 손끝이 꽤 매워보인다.
국내 여행 중에 꼭 빠지지 않는 코스가 있다. 바로 재래시장이다. 볼거리 많고 먹을거리, 이야깃거리 푸짐한 재래시장을 걷다 보면 으레 그 지역의 `참 맛`을 알게 되는 거다.   의성읍내 공설시장에서는 `의성=마늘` 등식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마늘 천지다.

김장철을 앞두고 시장에서 가장 활기를 띠는 곳도 마늘가게다. 가게마다 통마늘을 반접(50통)씩 묶느라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의성마늘은 조상 대대로 재배되어 온 토종마늘로 의성지역만의 특이한 기후와 토양 덕분에 쪽수가 6~8쪽으로 단단하고 저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장간도 만날 수 있다. 아직도 영업 중이다. 대장간 주인 최상길(78)씨는 이 자리에서만 50년 넘게 장사를 했단다. 지금은 낫, 호미, 칼 등 연장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아져 이곳을 찾는 발길은 크게 줄었다.

  용돈벌이 정도를 할 뿐이라는 최씨는 화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를 두드려 괭이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시장 내 솜틀집을 들어서기 전 `목화솜 탑니다`라는 입간판이 먼저 손님을 정겹게 반긴다.
근처 `목화솜 탑니다`라는 입간판도 눈에 띈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솜가루가 뽀얗게 앉은 기계 두 대가 멈춘 채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세월을 한참 전으로 되돌려 놓는다. 가게 주인 양영석 씨(75)는 "30년전 한창 때는 쉴 틈도 없이 솜을 탔다"면서 "헌 이불을 가져오면 새것처럼 만들어 그해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고 추억했다.

의성은 목화와 인연이 깊다. 원나라에서 목화 씨앗을 가져와 심었던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조선 태종 때 의성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이곳에 목화를 심어 솜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알려진다.

[가볼만한 곳]
▲고운사 지견스님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철관음)를 잔에 따르고 있다. 지견스님은 고운사 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 중이다.
◇고운사=이맘 때가 적기다. 유교, 불교, 교의 화려한 옛 문화가 고즈넉한 주변 절경들과 어우러져 절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유교의 전각 연수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종무소 뒤 만덕당 기둥 옆에 걸터앉아 하늘을 쳐다보면 고운사를 품고 있는 등운산 봉우리가 보인다. 부용반개 형상(연꽃이 반쯤 핀 모양)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으로 꼽힌다.   고운사는 최치원 선생이 한때 머물러 그의 손때가 남아 있는 신라 고찰. 의상대사가 이 절을 세운 것은 신라 문무왕(661) 시절로 사찰 이름은 처음에는 고운사(高雲寺)였으나 고운(孤雲) 최치원이 자신의 아호를 따 외로울 고(孤)자로 개칭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있다. 지견스님이 맡아 운영한다. 내용을 보면 다도는 물론이고 사찰요리, 청국장담기 등 참여자들의 연령,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해준다. 1인당 5만원.

 
▲수확철을 맞아 산수유마을 한 아낙이 딴 산수유열매를 정성스레 마당에 말리고 있다.
◇산수유마을=약재로 알려진 산수유 열매의 최대 산지 사곡면 화전 2, 3리 일원의 산수유마을 산책길도 걸어볼 만하다. 봄의 노란 산수유 꽃길도 아름답지만 이맘때 산수유 열매는 붉은 빛깔을 뽐낸다.   마을 들머리부터 논두렁, 밭둑길, 개울길이 온통 3만여그루의 산수유나무 군락이다. 3㎞ 산수유길은 변화무쌍하지는 않지만 소담스럽다. 화전리는 전국 최대의 산수유 생산지답게 생산량도 경북의 80%, 전국의 40%를 차지한다. 읍내에서 11km 가량 떨어졌다.

◇사촌마을=사촌면 한옥마을은 손때 묻은 고택의 멋스러움이 남아 있어 조선 선비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고택 20여채가 남아 있는 이 마을은 허난설헌의 남편 김자첨 등 안동 김씨와 풍산 유씨가 이주하면서 수백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다. 임진왜란 때는 경북 의병의 본거지 중 하나였다.

[가는 길] 서울에서는 경부고속도로~(신갈분기점)~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탔다가 남안동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경북대로(5번국도)를 타면 의성에 도착한다.

[의성군] 영남지방으로서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한다. 북쪽은 안동시와 예천군에 접하고, 동쪽은 청송군, 남쪽은 군위군과 구미시, 서쪽은 상주시와 인접하고 있다. 1개의 읍과 17면으로 구성된 의성은 3만 미만(2만7396명, 2011년 10월)의 인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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