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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년까지 집권시 스탈린 집권기간 넘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5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푸틴은 2030년까지 집권을 보장받게 된다. 푸틴의 건강 이상이나 정변 등 이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러시아 혁명 이후 최장기 권력자가 될 게 확실시된다.
푸틴이 러시아 권력 정점에 오른 건 1999년 12월 31일. 삼선 금지 헌법 때문에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에게 2008~2012년 대통령직을 맡겨두긴 했지만 그때도 실권은 푸틴에게 있었다. 2012년 대통령직에 복귀한 푸틴은 개헌을 통해 총 6선, 즉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그때까지 푸틴이 권좌를 지킨다면 30년을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제치고 러시아 혁명 이후 최장기 권력자로 등극한다. 러시아 제국 시기까지 확장해도 43년을 재위한 표트르 대제에 이어 2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푸틴의 장기집권을 저지한 대항마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레바다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8.0%가 내년 대선에서 푸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응답했다. 2위인 러시아공산당 파벨 그루지닌 지지율(1.3%)의 40%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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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감옥행…푸틴 대항마가 없다
이처럼 푸틴이 대선전에서 독주하는 건 그를 막을만한 야당 주자들이 모두 제거된 탓이 크다. 반푸틴 시위를 주도했던 야당 유력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인근에서 2015년 괴한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또 다른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0년 옛 소련이 개발한 화학무기인 노비초크가 들어간 차를 마시고 중태에 빠졌다. 나발니는 이후 의식을 회복하긴 했으나 2021년 러시아에 돌아온 후 2년 넘게 옥고를 치르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우린 푸틴 대통령이 의심할 여지 없이 러시아 최고의 정치가라고 수차례 말해 왔다”며 “러시아 안엔 푸틴 대통령의 경쟁자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땅 짚고 헤엄치는 선거’에서 푸틴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 압승을 원한다. 특정 정당·정파의 후보가 아니라 전(全)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사실상 여당 역할을 하는 통합러시아당이 있음에도 푸틴이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무소속으로 나서려는 것도 이런 욕심 때문이다. 크렘린 관계자도 “푸틴은 만인의 대통령”이라고 러시아 일간지 콤메르산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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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상설 시달리는 푸틴, 후계 육성 가능성도
푸틴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을진 푸틴 자신에게 달렸다. 푸틴은 1952년생으로 2036년 84세가 된다. 지난 몇 년간 푸틴은 갑상샘암이나 혈액암, 뇌졸중, 파킨슨병 등 여러 건강 이상설에 시달렸다. 잊을만하면 사망 루머도 나왔다. 알렉산더 모틸 럿거스대 교수는 “푸틴의 신체적·정신적·정치적 건강이 계속 악화한다면 러시아의 중요한 의사결정 능력도 저하될 것”이라며 “푸틴이 1999년 처음 집권한 때만큼 앞으로도 활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고 말했다.
니콜라이 그보스테프 미국 외교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푸틴이 이번 선거 이후 후계 구도 수립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드베데프나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 등이 후계자 후보로 거론된다. 메드베데프나 미슈스틴은 권력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 파트루셰프는 푸틴과 동갑이라는 점이 결함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푸틴이 20년 넘게 장기 집권하면서 권력 이양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망가졌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안드레아 움란드 스웨덴 국제문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권력 이양 과정에서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며 “푸틴주의 1.0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무질서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이라면 푸틴주의 2.0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