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
이번 개헌안 통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더이상 비(非)정당 정치인이 아니다. 대통령의 정당 참여가 가능해지면서 그는 자신이 공동으로 설립한 집권 정의개발(AK)당과의 유대관계를 즉각 복원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총리직을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직을 신설해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그 권한을 제공하게 돼 대통령의 파워가 막강해진다. 또 현재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을 5년으로 고쳐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치르도록 했다.
특히 대통령은 장관과 대법관을 비롯한 공직자 임면권과 의회 해산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며 정당 참여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의회 동의없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게 돼 언제든 국민들의 기본권과 자유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2029년까지 장기집권 예고
현재 터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2차례 연임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자신의 두 번째 임기중 의회가 갑작스럽게 조기 선거를 요구할 경우 자동적으로 3번째 연임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본다면 개헌이 성공되면 오는 2019년 발효되는데 이번 개헌안 통과로 지난 2003년부터 터키를 통치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2029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국민투표 승리 이후 TV연설에서 “터키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부 개혁을 이뤄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에르도안이 국민투표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정치적 불안정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일단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개표 중에 선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아나돌루통신이 개표율이 90%를 넘었다며 개표 현황을 중계중인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함 60%만이 개표됐다고 발표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케말 킬리크다로글루 CHP 대표는 “이번 투표는 의문점 투성이였고 법적 테두리를 넘어섰다”고 지적하면서 “개헌안 통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할 것이며 터키를 위험에 몰아 넣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HP는 즉각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고 선관위는 선거 조작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견제장치 미약한 의회
아울러 대통령이 의회 동의없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도 의회는 이를 줄이거나 늘리는 정도의 조치만 취할 수 있게 된다.
극도로 침체된 터키경제
이미 터키 경제는 최근 몇년간 군부 쿠데타와 정치적 불안정, 에르도안 대통령의 공무원과 언론인 구속사태 등으로 인해 극심한 침체를 겪어왔다. 지난해에 국가신용등급은 투기등급(정크본드)으로 떨어졌다.
특히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개헌으로 인해 정치 불안정성이 이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월팡고 피콜리 테네오인텔리전스 공동대표는 “일인 독재체제가 터키 경제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고 향후 정치적 폭력과 사회적 동요로 인해 국가경제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외외교 불안정성도 고조
일단 미국은 이번 개헌으로 인해 터키가 테러리스트로 부르고 있는 시리아 쿠르드족 반군에 대한 지원이 제약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이슬람국가(IS)를 진압하기 위해 터키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터키는 이를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지원하지 않도록 설득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에도 터키와의 난민송환협정이 번복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EU와 터키는 지난해 3월 그리스에 도착한 불법 난민을 터키로 송환하는 대신 EU의 터키 경제 지원을 늘리고 터키 국민의 EU 무비자 여행 보장, 터키의 EU 가입 협상 신속 진행 등을 골자로 하는 협정을 맺었다. 유럽의회가 터키의 EU 가입 협상 중단을 결정하자 불법 난민 카드를 압박카드로 꺼내들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특히 터키는 이번 개헌을 계기로 EU 가입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 이번 개헌안에는 터키가 지난 2004년 폐지한 사형제를 부활하는 안이 포함됐는데 EU는 사형제도를 금지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최근 연설에서도 개헌에 성공할 경우 곧바로 사형제를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