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직업 별난사람]"폭탄주도 칵테일이죠"

임재진 디아지오 브랜드 홍보대사
  • 등록 2012-01-13 오전 9:05:57

    수정 2012-01-13 오전 9:05:57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소주와 맥주를 1대4의 비율로 섞는게 좋습니다. 관건은 술을 넘길 때 생기는 목 따가움인데요. 젓가락으로 거품이 나도록 저어주세요. 목넘김이 부드러운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이 될 겁니다."

국내 최고의 바텐더 중 한명으로 꼽히는 임재진(사진) 씨에게 농담삼아 소맥 잘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진지한 답이 돌아왔다. 거품과 함께 따가움의 원인인 탄산이 날아가 맛있는 소맥이 된다는 얘기였다.

내친 김에 회오리주(손목을 돌려 술잔 안에 회오리가 생기게 한 술)도 비슷한 이치냐고 물었다. 조금 다르단다. 소주와 맥주가 잘 섞이지만 도구(젓가락)를 사용할 때에 비해 탄산을 줄이는 효과가 덜해 목넘김이 부드럽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듣고보니 그럴듯 했다.

"폭탄주도 칵테일의 한 종류입니다. 당연히 잘 알아야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조니워커스쿨. 술 한잔에 인생을 건 젊은이와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임 씨는 현재 디아지오코리아의 브랜드 홍보대사로 있다. 지난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 클래스 바텐더 대회`에서 4등을 수상한 뒤 곧바로 디아지오에 스카웃됐다. 올해 나이는 서른 한살. 바텐더 경력은 5년. 세계대회 수상 실력 치고는 경력이 짧지않냐고 물었다. 그는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노력"이라면서 "정말 미치도록 빠져들었다"고 했다.  
▲ 임재진 씨는 "칵테일에 미치도록 빠져들었다"고 했다. (사진=한대욱 기자)
◇ "제대로된 칵테일 배우고싶었다" 임 씨가 바텐더라는 직업에 눈을 뜬 건 지난 2005년. 군 제대 후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압구정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 뒤 트라이베카, 커피바K 등에서 본격적인 바텐더 일을 시작했다.

"커피바K라는 곳이 있습니다. 일본 클래식 칵테일바인데, 일하고 싶어 찾아갔죠. 사장님이 칵테일을 만들라고 해요. 맛을 보더니 돌아온 얘기가 `정말 형편없다`는 거였습니다.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죠. 그리곤 일본인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을 맛보라고 하더군요. 맛이 달랐습니다. 그가 만든 칵테일은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 하나의 맛이 났다면 제가 만든 건 각자의 재료가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아차 싶었습니다."

그 뒤 임 씨는 커피바K를 다시 찾아갔다. 무릎꿇고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월급을 더주겠다는 곳도 있었지만 뿌리쳤다. 그는 "돈보다 제대로된 칵테일을 배우는게 더 절실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약 400개의 레시피를 외웠다고 한다. 오후 2~3시 출근해 다음날 새벽 4~5시에 퇴근하는 날이 계속됐다. 하루 한시간씩 칵테일 제조연습을 했다고 한다. 연습할 때 드는 술값도 만만찮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셰이킹(흔들기)은 칵테일 용기에 쌀알을 넣어 연습했고, 스터링(젓기)은 맹물에 얼음을 넣고 했습니다. 제 월급 얼마나 된다고 비싼 술로 할순 없죠." 물을 찍어 항아리나 돌 위에 글씨 연습을 했다는 한석봉이 여기에도 있구나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 "전통 위에 새로움을…" 국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바텐더는 3000명 정도라고 한다. 급여수준은 천차만별. 20대 중반이면 월 평균 150만~180만원 가량 받는다고 한다. 지금은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받는 임 씨지만, 그도 바텐더 생활을 할 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도 만류했다고 한다.

"박봉에다 밤일이고, 그것도 술집에서 일한다는데 선뜻 내켜할 부모님들이 어디있겠습니까. 하지만 바텐더 생활을 하면서 국내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결국엔 허락해주셨죠."

지금은 가족들이 모이면 와인이나 위스키, 칵테일 등을 마신다고 한다. 임 씨가 만들고 싶은 칵테일도 홈메이드(home-made), 쉬운 말로 집에서 만든 것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라고 한다. 흔히 바텐더라고 하면 쇼나 마술, 댄스 등을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임 씨는 설명했다.

"바텐더는 크게 두부류로 나뉩니다.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플레어(flair) 바텐더가 있고, 저처럼 칵테일의 맛을 중시하는 클래식(classic) 바텐더가 있죠. 개인적으로는 `믹솔로지스트(mixologist)`로 불리고 싶습니다. 전통 위에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하는 사람이요."

임 씨는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딴 칵테일바를 열고 싶다고 했다. "바텐더만큼 마음과 마음으로 손님과 소통할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을 겁니다. 모이토, 사이드카, 코스모폴리탄, 마르가리타 등 여러 칵테일이 있지만 그 사람의 기분을 보며 그 사람만을 위한 칵테일을 선사하는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 모를 겁니다." 20대를 칵테일에 바쳤던 임 씨는 그렇게 새로운 꿈을 향해 가고 있었다.

■ 임재진씨는?

▲ 임 씨는 세계대회에 출전해 4위를 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본인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대회였다고 한다. (사진=한대욱 기자)
임 씨에게 가장 아쉬웠던 일을 묻자 "월드 클래스 바텐더 대회에서 4위 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회는 칵테일의 맛뿐 아니라 프리젠테이션 능력도 중시하는데 통역과정에서 하고픈 얘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4위에 그쳤다는 것이다. 승부욕이 엿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클래식`을 중시하는 임 씨도 세계대회에선 깜짝 퍼포먼스를 선보여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을 평가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임 씨는 고심 끝에 `충성주(머리를 탁자에 부딪쳐 만드는 폭탄주)`를 보여주기로 했다. "쿵소리가 나자 3초간 좌중에 정적이 돌더라구요. 그리곤 빵 터졌습니다." 임 씨가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에는 한국 직장인들의 충성주 문화도 한몫한 셈이다. 1982년생.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다가 칵테일의 매력에 빠져 바텐더의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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