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의 ARM 매각은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설립된 ARM은 반도체 설계도를 만들어 삼성전자, 퀄컴, 애플 등에 팔고 로열티를 받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95% 이상이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작동할 정도로 시장 영향력이 크다.
단독 인수보단 컨소시엄 구성 유력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ARM 인수 협상에 구체적으로 나선 곳은 엔비디아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주력으로 하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등 미래 유망 사업 분야에서 앞서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단독 인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업체인 엔비디아가 ARM을 사들일 경우 중국 당국이 독과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의 인수로 인해 시장 독과점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영향을 받게되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2018년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를 인수를 추진하자 중국 정부가 이를 제지한 바 있다. 엔비디아보다는 삼성전자가 적합한 인수 후보라는 분석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다.
다만 임 부소장은 ARM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 인수에 나서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봤다. 기업들이 단독 인수를 추진하면서 ARM의 몸값을 높이는 경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소프트뱅크, 삼성전자, 그리고 중국을 제외한 국가의 기업들이 지분에 공동 투자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며 “앞으로 ARM 설계도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투자한 지분 만큼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분 투자 논의가 진행 중이지 않다”며 “(ARM이) 원천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보니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지분 투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지각변동 이미 시작
ARM발(發) 지각변동을 앞둔 반도체 업계의 지형은 이미 꿈뜰거리고 있다. 반도체 관련 인수합병(M&A) 시장도 활발해졌다.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14조6000억원을, 신규 패키징·검측 공장 조성에 12조3000억원을 각각 투자해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벌리기로 했다. 아날로그 반도체 2위 업체인 미국 아날로그디바이스(ADI)도 경쟁사인 맥심 인티그레이티드 프로덕츠를 25조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가 28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후발 업체들의 추격이 매섭다. 중국 양쯔메모리(YMTC)는 지난 4월 삼성의 6세대 낸드 수준인 128단 낸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올 연말 양산에 돌입하면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1년 수준으로 좁히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의 미세공정 도입 지연과 애플의 ARM 기반 CPU 생산, 그리고 소프트뱅크의 ARM 매각 등이 맞물려 있다는 것은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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