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밥그릇’이 달린 문제여서 원칙이랄 게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조금 더 중장기적인, 국가적인 시각을 갖고 문제제기를 해볼까 합니다. “농어촌을 죽일 작정이냐” 같은 윽박지르기는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믿습니다.
국회 한 연구 “지역구 의원 법안은 ‘선심정치’ 경향”
연구논문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관이 18대국회 의원발의안을 바탕으로 쓴 ‘국회의원의 대표유형에 따른 정책적 관심과 영향력의 차이 분석’입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이 어떤 자세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계량화돼 있습니다.
이 논문의 결론은 명쾌합니다. 농림수산정책 관련법안 중 지역구 의원들이 낸 비중은 93.4%에 달했습니다. 전체 국회의원 중 지역구 비중은 82%입니다. 10%포인트 이상 더 높다는 얘기지요. 농림수산 관련법안은 농어촌을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이 분명한 이해관계를 갖는 영역이지요. 국토개발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택토지 수자원 교통 항공 철도 항만 등과 관련된 것인데, 지역구 의원의 비중은 91.1%였습니다. 조세재정정책 역시 지역구 비중이 높았습니다. 87.6%나 됐지요. 특히 조세특례제한법은 특정 지역 혹은 집단에 대해 공제 같은 세제혜택을 줄 수 있지요.
전 조사관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세 정책은 주로 분배적 성격을 가집니다. ‘선심정치’를 대표하는 특징을 갖지요. 다음 선거에서 지역주민에게 업적을 자랑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비례대표는 달랐습니다. △여성가족정책(39%) △보건복지정책(34.1%) △노동정책(27.7%) 등에서 많은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얼핏 봐도 세 정책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인구감소는 우리사회의 최대 재앙이지요. 출산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복지 역시 이와 연결되고요. 노동문제는 박근혜정부가 앞장서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요.
19대국회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각 상임위원회의 의원 배분을 보면 정확히 일치합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총 19명 중 비례대표가 2명에 불과하고, 국토교통위원회는 31명 전원이 지역구 의원입니다. 반면 보건복지위원회는 21명 중 8명이, 환경노동위원회는 16명 중 8명이 각각 비례대표입니다. 여성가족위원회는 대부분 비례대표(16명 중 11명)입니다.
비례대표 줄이면 국가정책 뒤로 밀릴 가능성 커져
지역구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부실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역구 정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문제는 그런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됐을 경우입니다. 본의 아니게 국회가 다루는 정책이 편향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농어촌 의원들의 말대로 비례대표를 줄이면 국가적 정책이 뒤로 밀리는 건 자명합니다. 정책간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건 국민들이 원하는 국회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저는 지방 소도시 출신이고, 부모님은 시골 출신입니다. 농어촌의 몰락을 잘 압니다. 심지어 90세가 넘으신 외할머니댁 마을은 현재 어르신들만 네 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릴적 다녔던 학교는 이미 폐교됐습니다. 도시로 떠나버린 농어촌 사람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진정성있는 유권자가 될지 의구심도 있습니다.
지역구만 찾아다니는 비례대표, 제도 욕보이는 것
그리고 하나 더. 현재 비례대표들도 자신의 의정활동을 냉정하게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비례대표가 된 것은 자신의 정당에 전국적으로 모아진 표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특정 지역구에서 뽑아준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가보다 지역구만 바라보는 건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비례대표제 자체를 욕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역구 의원이 되고 싶으면 지역구 밑바닥부터 닦는 게 순서입니다.
저는 여야 차원에서 비례대표가 가진 정책 ‘주특기’만으로도 재선을 넘어 3·4선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가 아닌 정책에 강한 중진 비례대표가 장관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는 건 너무 먼 얘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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