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키우는 규제자유특구]②'미래먹거리' 쏟아지는데…과제도 산적

'원격의료' 첫발 뗀 강원 특구
'환자-의사 간 원격 모니터링' 가능…디지털 의료산업 확대
14개 특구 사업 기간 매출 2.6조, 기업유치 540개 기대
사후관리·규제법령 정비 등 과제도 산적
  • 등록 2020-11-12 오전 6:00:00

    수정 2020-11-12 오전 7:52:59

[원주(강원)=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규제자유특구가 원격의료 사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디지털 의료기기 업체 ‘메쥬’는 지난 8월부터 원격의료 모니터링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 강원도가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서 의료법상 금지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모니터링이 가능하게 되면서다.

박정환 메쥬 대표는 “수 년 전부터 원격의료용 디지털 기기를 개발해왔지만, 규제로 인해 실제 적용은 동물에게만 가능했다”며 “강원 특구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메쥬는 자체 개발한 패치형 심전계를 원주시 소금산 출렁다리를 오르는 이용객의 가슴에 부착, 심전도와 위치 정보를 수집해 인근 병원에 전송한다. 병원 모니터링센터에서는 응급상황 발생 시 인근 구조대에 신호를 보내 환자를 구한다. 이렇게 모은 의료 데이터는 향후 환자의 일상생활 건강관리에 활용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원격의료 솔루션을 찾는 글로벌 대기업과 협업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규제자유특구, 지역 균형발전·혁신산업 육성 ‘전초기지’

정부가 지난해부터 지역 균형발전과 혁신산업 육성을 위해 지정하는 규제자유특구가 ‘혁신 발상지’로 거듭나고 있다. 11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7월 3차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국내에는 총 21개의 특구가 존재한다. 이들 특구는 원격의료나 자율주행, 무인선박, 신재생에너지, 의료용대마 등 규제에 막혔던 전략산업을 망라했다. 개별 기업의 규제애로 해소를 위해 도입한 ‘규제샌드박스’와는 달리, 정부가 산업 육성을 위해 지역 단위로 규제를 풀고 연구개발·사업화 자금 등 재정 지원 및 세제 혜택까지 준다. 특구에 참여한 기업들은 규제 제약 없이 마음껏 신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한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지난해 7월 1차 규제자유특구 지정 당시 “규제자유특구는 규제 혁신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신산업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규제자유특구는 출범 1년여 만에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중기부가 지난해 1·2차로 지정한 14개 규제자유특구 사업자 200곳의 고용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특구 지정 전과 비교해 1년 간 662명(15.9%)의 고용이 늘었다. 사업자들은 내년 말 실증 종료까지 총 981명 신규 고용도 계획한다.

특구 내 투자유치도 활발하다. 1·2차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지역에는 지금껏 3169억원 투자가 몰렸다. 경북(1964억원)과 전남(1183억원) 등을 필두로 특구에는 대규모 공장이 속속 들어선다. 중기부와 지자체는 특구 사업 기간 내 총 매출 2조 6000억원, 기업유치 540개를 기대한다.

특구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에서 돌아온 기업도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던 토종 자율주행 스타트업 ‘팬텀AI’는 지난 3월 세종시에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세종 자율주행 특구에 참여 중이다. 국내에서는 현행법상 자율주행차가 일반도로를 운행할 수 없었지만, 세종 특구에서는 전용도로를 통해 운행이 가능하다. 우훈제 팬텀AI 이사는 “미국에서는 자율주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나 개별 사업을 적극 지원하지 않는다”며 “세종 특구는 통신과 첨단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어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실증하기 위한 최적지”라고 말했다.

중기부와 지자체는 특구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빠른 시일 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연구개발·사업화 자금을 적기에 지원하고, 현장점검반을 통해 애로사항을 지속적으로 청취한다는 방침이다. 김희천 중기부 규제자유특구기획단장은 “특구 사후관리를 포함해 철저한 진도관리로 기업들의 성과창출을 유도할 계획”이라며 “성과가 우수한 특구에는 포상금 지급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5월 오전 세종시 중앙공원에서 열린 세종 자율주행실증 규제자유특구 특구사업자 소통간담회를 마친 뒤 자율주행차량을 탑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규제법령 정비·진도관리 등 과제도 산적


이렇듯 규제자유특구는 정부 규제 완화 첨병을 맡고 있지만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1·2차 특구로 지정된 14개 특구는 내년 말을 끝으로 사업이 종료된다. 그러나 특구 사업 39개 중 15개는 아직 실증에 돌입하지 못했다. 실증사업을 위해서는 먼저 기업이 특구로 이전을 해야 하고, 사업에 따른 책임보험 가입이나 이용자 고지 등 사전 준비를 마쳐야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정이 밀렸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비해 경영환경이 떨어지는 지방을 거점으로 실증사업을 하다 보니, 후속 투자나 홍보에 애로를 겪는 기업도 있다. 박정환 대표는 “강원도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홍보가 잘 안 돼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업계에선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벤처캐피탈(VC) 역시 대다수가 수도권에서 활동해 투자 유치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구 사후관리를 맡을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실증사업에 필요한 기술개발과 안전성 검증, 사업화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기부와 지자체의 세밀한 진도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기부 규제자유특구기획단 소속 공무원 한 명이 5~6개 특구를 동시에 맡는 경우도 있어 업무가 몰린 상황이다. 실증 특례기간(2+2년)이 끝날 때까지 관련 규제를 정비해 기업들이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후속 법령정비도 과제로 남아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정부가 규제특구를 통해 전략산업 육성 의지를 보인 만큼, 새로운 규제를 꾸준히 발굴해 특구 사업을 영속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사후관리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후속 법령정비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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