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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티스트’라고 쓰고 ‘팔색조’라 읽는다. 글발이 만만찮다. 진솔한 문체로 자신의 목소리를 책으로 펴내는 예술가가 늘고 있다. 특별한 목적 없이 가장 편하고 ‘나’스럽게 쓴 글들이 주를 이룬다. 장르도 다양하다. 에세이집은 기본이고 작업노트와 시집, 데뷔 자축 기념집까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는 셈이다. 예전에는 몇몇 연예인이 구술하거나 대필작가를 통해 책을 냈다면 최근에는 글 쓰는 데 주저 않고 자신의 삶을 직접 꺼내놓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음악·연기·연출 등 예술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만큼 특유의 창작력과 전달력이 돋보인다.
입말을 그대로 옮겨 쓰는 글투는 언문일치로 읽혀 아티스트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다. 예술가 자신도 책을 써냄으로 몸과 태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단다. 최근 들어서는 극작가 겸 연출가 이상우(55) 극단 차이무 예술감독이 연극인생 40년여만에 첫 책을 냈고 극작가·연출가·평론가인 이윤택(64)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배우 배종옥·김소현·박정민, 피아니스트 임현정 등도 에세이집을 펴내며 또다른 자신을 꺼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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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도, 아포리즘(금언·격언·경구·잠언 따위의 짧은 글), 연극작법도 아니다. 그냥 이상우 식 연극적 글쓰기라고 하자.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갑자기 고교 3학년 때 ‘진학상담 회고’를 한다. ‘국어선생은 “비서학과나 가라”는 조언을 했다. 당시 비서학과는 여대에만 있었다’고 썼는데 그 안에 희한하게 연극적 장면이 스친다.
‘야생연극’(나의시간)은 이상우 예술감독이 20여년 틈틈이 적은 메모를 모으고 갈무리한 책이다. 연습실·공연장·강의실에서 이것저것 주워 메모해뒀던 생각 쪼가리들이란다. 부제가 ‘젊은 연극작가를 위한 창작노트 3막 1109장’. 40년 연극판 인생의 첫 책인 만큼 내용면에서 알차다. 창작 소재나 영감이 떠올랐을 때, 연출하며 느낀 점, 연극에 대한 철학, 사사로운 단상과 고백, 기억에 남겨놓고 싶은 남의 말과 짧은 글 등 1109편이 빼곡하다.
1977년 극단 연우무대 창단, 1995년 극단 차이무를 만든 그가 연극을 왜 하게 됐는지, 차이무식 연극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생애 첫 인터뷰 때 “연극을 왜 하지요”란 기자의 물음에 “연극을 하면 공연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라고 대답했다.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더란다. 그런데 지금 다시 묻는다면 “너무 가슴 아프고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많아서, 그 말을 하고 싶어서”라고 하겠단다.
‘하산 길/ 섬진강가에 당도한 젊은 중/ 세상을 가로질러 가려니 막막해/ 목 놓아 울다가/ 문득/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 떼를 보았다/ 자신의 울음이 노래인 줄 알고/ 춤추는 은어 떼를// 그 착한 중 제 설움일랑 잊고/ 춤추는 은어 떼를 위해/ 목 놓아 노래를 부르니// 그 노래/ 세상을 가로질러 가다’(이윤택 시집 ‘숲으로 간다’ 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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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고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강점. 현실을 비틀거나 낭만적 연출을 지향하는 그의 연극작품과는 다소 다르다. 일상에서 시적인 것을 건져 올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윤택만의 관찰력과 위트가 살아 있어 그의 작품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난시현상’ ‘낮은 음은 통곡이다’ ‘내가 쓰는 시의 각도’ ‘새벽에 시를 품다’ 등은 시인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일상과 이상 간 괴리, 시어 찾아내는 과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4부에 쓴 시극 ‘꽃을 바치는 시간’은 올해 말 극장에 올릴 예정. 그가 직접 연출하고 김소희·김미숙 등 관록의 배우를 무대에 세운다.
△에세이집 낸 배종옥·박정민·김소현·임현정
특히 올 하반기 작가에 도전한 아티스트가 적잖다. 배종옥(52)이 첫 책 ‘배우는 삶, 배우의 삶’(마음산책)을 냈다. 데뷔 31년 만이다. 중견배우가 생각하는 배우론과 인생을 책 한 권에 녹였다. 배종옥은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공부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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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신예 박정민(29)은 산문집 ‘쓸만한 인간’(상상출판)을 내놨다. 2013년부터 매거진 ‘톱 클래스’에 연재한 칼럼 ‘배우 박정민의 언희’를 묶어 출간했다. 연기·청춘·여행·고민 등 ‘맛깔난’ 표현이 많다. 올 12월 문근영과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호흡한다.
‘주안이 엄마’로 대중에 더 잘 알려진 뮤지컬배우 김소현(41)은 ‘싱크 오브 미’(에이엠스토리)로 데뷔 15년을 자축했다. 뮤지컬의 무대 뒤 이야기는 물론 의상·소품 등에 얽힌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썼다. 피아니스트 임현정(30)은 ‘침묵의 소리’(청미래)로 자신만의 세계를 전한다. 피아노를 시작했던 때부터 중학교 1학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어린시절과 지금까지 연주자로 살아온 짧지 않은 시간을 생생하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