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에 뒤엉킨 드레스'가 의미하는 건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
7개국 14명 작가 '여성혐오증' 맞서
설치미술로 다양한 '페미니즘'표현
11월8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 등록 2015-10-20 오전 6:15:00

    수정 2015-10-20 오전 6:15:00

일본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꿈 꾼 이후’(사진=시오타 치하루).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여성혐오증’이 만연해 있다. ‘데이트할 때 왜 남자가 밥값을 내야 하나’ 혹은 ‘왜 남자만 군대를 가는가’ 식의 남녀간 성 대결을 조장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페미니즘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오는 11월 8일까지 여는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은 근래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여성혐오’ 문제와 맞물려 다시 부상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예술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자리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른바 ‘여혐’이라 불리는 여성혐오증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1970년대 여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최근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적 가치로서 변모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를 마련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전시의 부제인 ‘판타시아’는 ‘판타지’(fantasy)와 ‘아시아’(Asia)의 합성어. 한국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시각에서 동아시아 여성미술의 현재와 의미를 살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강애란·이진주·장파·정금형·정은영·함경아 등의 한국작가를 비롯해 일본의 시오타 치하루, 중국의 인 슈전, 태국의 아라야 라스잠리안숙, 싱가포르의 밍윙, 인도네시아의 멜라티 수료다모, 인도의 실라 고우다 등 7개국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회화와 사진, 설치, 영상 등 50여점을 통해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작가적 상상력을 가지고 다양하게 접근한다. 이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억압하는 부계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또한 남성이 욕망하는 성적 환상의 대상이 된 여성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대표작가였던 시오타 치하루의 ‘꿈 꾼 이후’는 여성 판타지의 대표적인 상징인 순백색의 드레스에 검은 실을 거미줄처럼 엮어 만든 설치작품. 검은 실로 뒤엉킨 하얀 드레스는 산만하면서도 갑갑하다. 여성이 받는 억압에 대한 은유다. 정은영 작가의 ‘소상팔경’은 ‘심청가’를 은유적으로 재연했다. 정 작가는 심청이 여성으로서 처한 가혹한 상황과 아버지를 위해 소신공양을 당연시하는 전통적 윤리의식의 폭력성에 주목하고 이를 비틀어 영상 등 설치작품에 담았다.

강애란 작가의 ‘응답하라 리-보이스’는 전시장 한편을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동굴처럼 꾸미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내보인다. 피해자임에도 한때 손가락질당하던 ‘혐오’의 존재였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육성이 가슴을 후빈다. 참여작가 중 유일한 남성인 밍웡은 ‘홍콩 다이어리’를 통해 여장을 한 남자의 일상과 무대 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으로 여성적인 아름다움의 본질을 되묻는다.

정은영 ‘소상팔경’의 한 장면. 심청가를 은유적으로 재연한 작품이다(사진=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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