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명분·실리 모두 잃은 제약업계

  • 등록 2012-04-05 오후 12:10:00

    수정 2012-04-05 오후 12:1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05일자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한동안 제약업계를 들썩였던 약가인하 소송전이 정부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나는 분위기다.

많게는 100곳 이상 복지부를 상대로 약가인하 취소소송을 제기할 태세였지만 이름도 낯선 중소업체 5곳만이 소장을 접수했다. 일성신약, 다림바이오텍은 소송을 취하했으며 KMS제약, 에리슨제약, 큐어시스 등의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됐다.

일부 업체의 본안소송이 남았지만 집행정지 결정 당시 재판부의 분위기를 보면 이미 게임은 끝난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제약사가 승소해 약가인하가 환원되더라도 시장에서의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불과 한두달 전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약가인하 계획이 발표되자 제약업계는 "신약개발이 위축되고 제약사 종사자 8만명 중 2만명이 실업자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1월 장충체육관에는 1만여명의 제약사 임직원들이 모여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을 규탄하기도 했다.

물론 제약사 입장에서는 물론 리베이트 감시, 혁신형 제약사 선정 등 칼자루를 쥐고 있는 복지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적잖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국제약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윤석근 일성신약 사장이 대표 자격으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집행정지 결정 전날에 소를 취하하는 해프닝이 펼쳐진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윤석근 이사장은 "뒤로 칼을 숨기고 복지부와 협상할 수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제약사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셈이다.

게다가 집행정지 판결에서는 "제약사들이 연구개발보다 리베이트에 의존한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 약가를 인하할 필요성이 있다"는 복지부의 명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약가인하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어진다"는 제약사들의 불만이 엄살이었다는 눈초리도 얻게 됐다.

사실 제약업체들에 이번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은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의약품의 약가를 평균 14%로 인하하기 때문에 업체별로 평균 10% 이상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상위제약사 중 지난해 영업이익이 매출의 10%를 넘긴 업체는 동아제약, 녹십자, 종근당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소송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약가인하에 따른 손실은 그대로 감수하고, 국민들로부터는 '거품이 낀 약가로 폭리를 취한 기업'이라는 누명만 쓰게 된 것이다. 최근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상위사와 중소업체와의 갈등은 아직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

결과론이지만 차라리 정부의 약가인하 계획이 발표됐을 당시 "국민들의 약값 부담 완화를 위해 약가인하를 수용하겠다"고 생색이라도 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국민들에게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로부터 "수년내 유사한 약가인하 정책을 단행하지 않고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복지부도 이미 약가인하분을 반영해 올해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2%대로 낮췄기 때문에 다급한 입장이었다. 제약사들의 협상력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다.

제약사들은 결국 정부와 경쟁사들 눈치 보느라 결정도 못하고 망설이다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어버리게 됐다. 아직까지 글로벌 신약을 단 한 개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제약업계의 현실이 투영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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