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촌놈의 뚝심이다. 그가 20여 년간 소에게 품은 정을 놓지 않는 것은. 1986년, 화가 이종구(1954년 생)는 <아버지의 소> (맨 아래 그림)를 통해 소 값 폭락을 고발했다. 당시 110만원에 사들인 송아지가 어미 소로 팔 때 80만원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소>의 주인공은 화가의 아버지다. 그가 최근작을 모아 전시회에 내놓은 것 중에도 ‘소 그림’이 많다. 그의 고향은 충남 서산군 대산면 오지리. 초등학교 때까지 꼴도 베고, 소죽을 끓이고, 소에게 풀을 뜯기러 다녔다.
그의 작품 <질주>는 유독 눈길을 끈다. 검푸른 파도 위를 내달리는 황소. 파도가 아니라 잿빛 들판이다. 새해농사에 앞서 병충해를 없애기 위해 쥐불 놓기를 끝낸 논이랑이다. 재로 덮인 흙더미에서 콧김을 내뿜으며 날아오를 듯 질주하는 황소. 잿더미에서 부활하는 피닉스(불사조)같다. 기록 영화 '워낭소리'의 소가 다시 부활한 것일까? 작가는 힘겨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대추리의 기억>. 미군 헬기 아래 주름 깊은 할머니의 시선은 평생 삶의 터전인 대추리를 떠나야 하는 착잡함이 묻어난다. 한우와 그 위를 나는 외국 국적 항공기를 담은 <무자년 여름>. 이 그림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창 일 때 그린 것이다. 소의 두려운 눈빛은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다. 반면, 소 등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만월을 그린 <월출>. 이 작품은 마치 소의 등이 능선인 것처럼 포근함을 준다.
이종구 작품 전시회는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신관에서 4월 26일까지 계속된다. 같은 기간 학고재 본관에서는 프랑스 추상미술의 대표작가 베르나르 프리츠의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이종구씨는 "극사실주의인 자신의 작품과 추상회화의 대표작가 작품이 한 화랑에서 동시에 전시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종로 빈대떡과 피자의 만남"이라고 비유했다.
관람료:무료. 관람 문의:02)720-1524.
▶ 관련기사 ◀
☞추상화에서 관능이 폭발하다.
☞‘그림 한 점’의 행복…경향갤러리 ‘90만원전’ 31일까지
☞‘샌들, 물통’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