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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화성시 동탄 일반산업단지 내 본사에서 만난 이경재 삼진엘앤디(054090) 회장은 접견실 조명을 조정하는 시범을 보였다. 그의 회사 건물에는 조명 스위치 옆에 터치식 컨트롤러가 설치돼 있었다. 조도 버튼을 위아래로 터치하면 방안이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 색온도 버튼을 터치하기에 따라 화려한 백화점의 실내처럼 밝고 하얀 조명에서부터 노을 지는 저녁 해가 만들어내는 따스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태양이 떠오를 때 색온도는 2300~2700켈빈(Kelvin) 정도 되고 대낮에는 1만 1000켈빈까지 올라가요. 전 세계 유명 조명학자가 연구한 결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색온도는 지금 제가 조정한 5500켈빈 정도죠.”
삼진엘앤디는 발광다이오드(LED) 시장에 뛰어든 후발 주자다. 미국의 크리, 일본의 니치아 등 선진글로벌 기업들은 30년 이상의 칩 개발 역사를 갖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필립스, 오스람, GE 등 조명 빅3 업체도 소자 업체와 협력체제를 구축해 공정을 수직계열화하고 치열한 가격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삼진엘앤디는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인 2009년 4월부터 LED 조명 개발을 가속화했다. 여기에는 1987년 창업 이후 도광판, LCD, 2차전지 부품을 개발하면서 쌓아온 회사의 노하우가 반영됐다. 삼성디스플레이에 LCD TV와 LCD 모니터의 백라이트(BLU) 부품을 공급하던 회사는 이 기술이 LED 조명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진입 장벽이 높아진 시장에 독자적인 제품을 만들어 공략해 보자는 이 회장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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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LED 관련해서는 중국 업체도 많고 선진 업체들도 많이 진입해있는 상황이어서 경쟁이 심화돼 있었다”며 “하지만 LED 조명등을 만들돼 차별화해보자고 생각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사업성을 보장할 수 없으니 미국과 일본 시장을 뚫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HCLC와 연계해 감성조명을 시범 설치한 곳이 시애틀 메리어스 구단의 라커룸이다. 이 회장은 “선수들이 시합을 마쳤을 때는 휴식에 적합한, 시합에 나가기 전에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조도와 색온도가 필요하다”며 “이 조명을 식당과 피트니스센터에도 설치한 결과 선수들이 굉장한 만족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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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엘앤디의 도전 덕에 회사 LED 조명 제품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을 비롯해 중국, 태국, 스위스, 핀란드,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실내를 밝히고 있다.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작 회사인 미국 보잉사, 미국 프로야구팀인 시애틀 매리너스 구장, 뉴욕의 지하철과 메소디스트 병원, 시애틀과 하와이에 위치한 학교, 일본 규슈의 유메 타운(Youme Town) 쇼핑몰에 설치된 조명이 삼진엘앤디의 제품이다. 가깝게는 서울 왕십리역 역사, 국회의사당 신관, 화성시청 청사 등이 삼진엘앤디의 조명을 쓰고 있다.
삼진엘앤디는 지난해 북미 진출 2년 만에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329%의 수출증가율도 기록했다. 삼진엘앤디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26억 8900만원으로 전년대비 흑자전환했고 매출액은 2818억 1900만원으로 전년보다 22.5%나 증가했다.
이 회장은 이런 성적의 뒤편에는 정부의 적절한 지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잠재력을 갖춘 중견·중소 기업을 집중 지원해 2020년까지 세계적인 강소기업 300개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월드클래스 300’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이 삼진엘앤디를 선정함에 따라 KOTRA는 2014년말부터 삼진엘앤디와 매칭펀드를 통해 해외 마케팅을 위해 협력했다.
협력사로서 20여 년 간 착실히 쌓아온 경쟁력은 삼진엘앤디에게 훌륭한 디딤돌이 됐다. 그는 “삼성의 협력사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회사가 2010년 프린터 피니셔 개발에도 뛰어든 이유다. 일본 코니카-미놀타 사의 제품에 프린트물의 철, 타공 등 마무리작업을 처리하는 옵션 부품인 피니셔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업그레이드 버전까지 개발해 양산에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이 회장이 꼽는 올해의 옥동자는 역시 LED 조명이다. 해외 수출 전망이 밝다고 했다. 최근 괌에 1만 여대의 가로등을 LED 조명으로 교체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진퍼시픽 법인을 설립했다. 이 달과 다음 달에 걸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현지 법인을 추가 설립할 계획도 이 회장은 밝혔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조명등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그는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활로를 펴기 위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조명을 설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각 정부가 자금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설치 자금을 각국 정부에 지원하고 매년 분할상환 받는 방식으로 지원책을 펼치면 우리 기업과 정부가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올해 이 회장이 세운 사업 목표는 지난해 성적보다 17.1% 증가한 매출액 33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4년 뒤인 2020년 매출액 1조원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삼진엘앤디는 이제 청년기를 넘어섰습니다. 그동안 고난도 참 많았죠. 중소·중견기업이 살아가려면 수출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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