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강좌열풍…딱딱한 '과학'까지 뻗쳤다

교보·예스24 등 서점 강연에 '과학' 추가
메르스여파에도 세대불문 청중 북적
강좌흥행, 도서판매로 연결되진 않아
상반기 베스트셀러 중 과학분야 '전무'
  • 등록 2015-06-18 오전 7:23:49

    수정 2015-06-18 오전 8:33:07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열린 ‘교보인문학석강’에서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사진=교보문고).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23층에는 배움의 열기로 가득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과학의 눈으로 역사를 보다’를 주제로 마련한 2015 교보인문학석강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메르스 여파로 문화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총 300여석은 강연이 시작될 때쯤 80% 가까이 채워졌다.

인문학 열풍이 과학분야로까지 지평을 넓히고 있다. 대개 서양철학이나 한국사, 중국 고전읽기 등에 국한했던 인문학 강좌가 과학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늘리고 있는 것. ‘인문학과 과학.’ 다소 이질적인 조합으로 보이지만 파급력은 상당하다. KBS의 교양프로그램인 ‘장영실쇼’의 경우 철학·종교·예술 위에 과학을 맛깔나게 담아내 호평받고 있다. 과학이 어렵고 딱딱하다는 상식을 깨고 있는 것이다. 실제 상대성이론, 블랙홀, 웜홀 등 난해한 물리학적 지식이 배경이 되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1000만 관객이 몰릴 정도다.

◇인터넷의 인문학적 성찰

크고 작은 인문학 강좌를 마련해 주요 온·오프서점은 최근 과학분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교보인문학석강의 경우 한·일협정 50주년을 기념해 4월 ‘일본’을 화두로 강연을 진행했는데 6월의 주제가 ‘과학의 눈으로 역사를 보다’다. 이수현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장은 “보통 문·사·철 중심으로 강연이 이뤄졌다”면서 “철학 자체가 과학을 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이번에는 과학과 역사를 접목했다”고 밝혔다.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메디치미디어)의 저자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11일 특강에서 70여년 인터넷의 역사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살펴보며 사람과 기계의 공존을 성찰했다. 정 교수는 “IT역사의 기점은 1955년으로 스티브잡스(애플), 빌 게이츠(MS), 에릭 슈미트(구글) 등 세계를 바꾼 기업을 만든 이들이 태어난 해”라면서 “인터넷의 역사는 그보다 앞서 2차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의 태동에서부터 발전과정, 미래예측까지 풀어낸 정 교수의 강연에는 40·50대 중년 남성부터 젊은 대학생, 10대 학생까지 다양한 계층이 함께했다.

그간 저자와 독자의 만남을 주선해온 인터넷서점 예스24도 과학분야 강연을 강화했다. 대개 문학이나 베스트셀러 작가 위주로 진행하던 데서 탈피한 것이다. ‘사물인터넷 실천과 상상력’(커넥팅랩)의 저자 편석준·이정용·고광석·김준섭, ‘마음의 미래’(김영사)를 펴낸 이론물리학계의 석학 미치오 카쿠, ‘한국생명공학 논쟁’(알렙)의 저자 김병수 등의 강연이 대표적이다.

◇도서 판매량과는 연결 안돼…‘코스모스’ 부동의 1위

비단 서점들이 주최하는 강연뿐만이 아니다. 도서관·관공서·대학·기업 등 주요 기관과 단체가 진행하는 인문학 강연에도 유명 과학자 출신의 스타강사가 꼭 등장한다.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등으로 유명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과학콘서트’로 잘 알려진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대표적이다. 최 교수와 정 교수는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과학대중화에 앞장서 온 이들이다. 최근에는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TV 강연 등 왕성한 활동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학이 인문학의 힘을 빌려 교양의 지위를 얻었지만 이 분야 도서판매량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 교보문고가 최근 발표한 2015년 상반기 도서판매 동향을 살펴보면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에 과학도서는 한 권도 없다. 과학서적이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로 팔리고 있는 추세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과학분야에서 독보적인 서적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이기적 유전자’와 ‘과학콘서트’ 등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영향으로 킵 손의 ‘인터스텔라의 과학’과 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도 독자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국내 과학저술가도 많지 않고 강연회도 가뭄에 콩 나듯이 특별이벤트처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과학도서는 인문서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도훈 예스24 자연과학 분야 MD는 “과학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주요 스테디셀러의 판매비중이 높은 편”이라면서 “2015년 상반기에는 ‘인터스텔라’ ‘이미테이션 게임’ 등 영화 관련 과학도서 판매량이 좋았다. 최근에는 빌 게이츠가 추천한 ‘위험한 과학책’처럼 쉽고 재미있는 콘셉트의 과학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2015년 상반기 과학분야 베스트셀러(자료=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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