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키스 해방구

서울 종로타워·대학로·63빌딩 식당서 ‘눈치 안보고 쪽~’
레스토랑 한 켠의 별도 키스공간엔 순서 기다릴 정도
  • 등록 2006-01-24 오전 8:31:04

    수정 2006-01-24 오전 8:31:04

[조선일보 제공] 서울 도심 곳곳에 젊은 남녀 연인들을 위한 ‘키스(kiss) 구역’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애정 표현 바람을 타고 이런 공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키스공간의 커밍아웃이다. 서울 종로1가에 자리 잡은 종로 타워 33층 양식당 ‘탑 클라우드’. 주말이면 이곳은 손님들의 절반 가까이가 남녀 커플일 정도로 젊은 연인이 많다. 서울에서 ‘좋은 조망권’을 가진 몇 안 되는 곳이라는 점이 분위기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 식당의 또 다른 인기 비결 중 하나는 ‘키스 브리지(kiss bridge)’라고 이름 붙인 공간. 이 식당이 지난해 12월 키스 등 연인들의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을 위해 조성한 공간이다. 탑 클라우드는 도넛 모양으로 설계된 식당의 특성상 식당 한가운데 폭 2m의 도로가 20m 가량 이어지는 기다란 별도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촛불 100여개를 켜 놓고 분위기를 한껏 돋운 것이다. 밖으로는 서울의 야경(夜景)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반면 식당의 다른 테이블에서는 브리지 안쪽이 잘 안 보여 연인들이 자주 찾는다. 탑 클라우드측은 “본래 야경 감상 공간이었는데 이곳에서 키스하는 연인이 많아 거의 전용 공간으로 꾸민 것”이라고 말했다.

연인들이 키스 브리지 안에서 뽀뽀를 나누는 시간은 대략 2~3분. 탑 클라우드 관계자는 “작정하고 찾아서인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많을 경우 브리지 안에서 두세 커플이 동시에 키스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른 커플의 뽀뽀가 끝날 때까지 순서를 기다린다. 자연히 키스 브리지 입구 앞 테이블에는 젊은 커플이 많이 자리 잡고 앉는다. 일부 연인들은 한 손으론 연인을 껴안고 다른 손으로는 카메라폰을 꺼내 자신들의 모습을 기념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탑클라우드 김학수 지배인은 “중년층 손님들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냥 씩 웃는다”고 말했다. 식당측은 지난 12월 도입 이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5%쯤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입술을 포갠 연인을 축복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눈치보지 않고 키스할 수 있는 '키스 특구'가 젊은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타워 33층 레스토랑 탑클라우드에서.
여의도 63빌딩 59층에 위치한 식당 ‘워킹 온 더 클라우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조망권을 가진 이곳에 들어서면 와인과 함께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과 색색의 조명으로 포장된 한강다리, 붉은 빛의 차량행렬이 빚어내는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랑의 속삭임이 벌어지는 곳이다. 업소 관계자는 “키스 인파는 밤 10~11시 무렵 절정을 이룬다”고 말했다.

높은 빌딩만 키스의 명소는 아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대학로의 카페 ‘민들레영토’도 연인들 사이에서는 ‘키스 명당’으로 통한다. 이 카페 지하에는 두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커플 의자 60여개가 거의 대부분 대형 스크린을 향해서만 배치돼 있다. 자연히 서로의 애정 표현에 몰두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정혜인(가명·25·대학생)씨는 “대학로나 신촌의 유명 카페 중에는 이런 ‘연인석’이 마련돼 있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애정 표현 욕구와 자신들의 추억 만들기에 열중하는 젊은 세대로 인해 키스 공간의 커밍 아웃 현상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밤 서울 명동성당의 마리아상 앞에서 촛불을 켜놓고 남자친구와 키스를 했다는 김현영(가명·여·20)씨는 “도심 한복판, 그것도 유명 장소에서 촛불을 켜놓고 둘이 손을 잡았는데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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