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물보호법은 도박·유흥·오락 등을 목적으로 한 동물싸움을 금하고 있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소싸움이다. 경북 청도군을 포함해 전국 11개 지자체서 소싸움 대회가 열린다. 소들은 날카로운 뿔로 서로를 찌르며 힘을 겨룬다. ‘경북 청도군 공영사업공사’는 싸움의 박진감을 고조시키겠다며 싸울 의지가 없는 소들을 가려내려는 ‘프리테스트’를 도입했다. 테스트 도입 이후 소싸움에 돈을 건 사람들은 “경기가 박진감 넘친다”며 환호한다는 보도까지 나온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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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투견은 불법이다.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에 따르면, 누구든 동물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학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고 투견을 사육·훈련하거나 싸움에 참가·관람할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투견과 마찬가지로 소싸움에도 판돈이 걸린다. 소싸움 경기규칙은 조금씩 다르지만, ‘청도소싸움축제’에선 경기 시간 제한이 없다. 승패가 갈려야만 경기가 끝난다. 먼저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는 소가 지게 된다. 싸움이 격해지면 상대 뿔에 찔려 피를 흘리거나 살가죽이 찢기기도 한다. 때론 경기 도중 입은 부상이 악화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싸움소를 만들기 위한 가혹한 훈련은 동물학대에 준하는 행위다. 선발된 싸움소들은 평균 5~7년간 경기에 출전하는데 목에는 모래 주머니를, 다리에는 타이어를 차고 산을 오르내린다. 소싸움 기술 중 하나인 버티기를 길게 할 수 있도록 산비탈에 장시간 묶여있기도 한다. 이 과정을 거친 소들은 만성적인 관절염이 생겨 평생 통증을 안고 살다가 나이가 들면 도축된다. 경기 도중 생긴 두부 충돌로 뇌진탕에 빠져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싸움소들은 몸무게를 측정하고 대진표를 작성하기 위해 소 싸움날 하루 전 계류장에 도착한다. 소들은 폐쇄적인 트럭 안에서 덜컹거리는 소음과 진동을 장시간 버틴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소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수송열(호흡기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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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 논란이 인 모든 과정은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이하 소싸움법) 제4조를 통해 합법이 된다. 해당 법률은 소싸움에 동물보호법 제8조 2항과 제46조 1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제8조 2항은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한다. 제46조 1항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02년 제정된 소싸움법은 법률 보완을 위한 개정 등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동물권’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시행원칙에 대해선 “소싸움 경기의 운영 및 방법 등을 정할 때에는 싸움소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적시했지만, 경기규칙은 지자체 재량이어서 동물보호에 관한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소싸움법에서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소 보호에 관한 내용이 빠진 거다. 예컨대 동물원법은 동물을 이용하더라도 동물에 대한 기본적 보호 규정은 다 명시돼 있다”며 “최소한 싸움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지침은 명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싸움 훈련사 등 자격요건에서 동물보호법 위반이나 동물학대 혐의로 처벌된 경우 그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이 없다”며 “소싸움은 소의 상해가 유발될 수 있으므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세세한 상세규정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소싸움 육성, 지역주민 저항에 백기
당시 건립 반대에 앞장섰던 허은주 수의사는 “정읍시는 매년 소싸움을 임시 경기장에서 하는데 아예 상설 경기장을 짓겠다고 했다. 당연히 연습경기나 소싸움 경기의 빈도수가 늘어날 것 같아 반대하게 됐다”며 “정읍 내 여러 시민단체분들이 같이 참여해주셨다. 반대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많다는 걸 알리기 위해 1인 시위를 시청 앞에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 수의사는 “소 싸움 경기장에서 입장을 거부하는 소들이 많았다. 실제 경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 때문에 소들로 하여금 싸우고 싶게 만들기 위해 주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는 게 태반이었다”며 “‘경북 청도군 공영사업공사’가 도입한 프리테스트는 오히려 소싸움의 강제성을 반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계류장에 놓인 소들을 본 적 있는데 이미 부상을 많이 입은 상태였다. 소독약도 상비돼 있었다”며 “(끌려와) 서 있는 광경도 끔찍했다”고 덧붙였다.
동물담론 등을 연구하는 전의령 전북대 교수는 저서 ‘동물 너머’에서 “한국서 소싸움은 전통문화의 자원화 측면서 지자체가 주도하는 행사로 인구 자원 및 자본 소멸 속 살아남으려는 지방 정부의 빈약한 대안”이라며 “전통문화라는 위치는 소싸움을 동물학대로 재규정하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소장은 “싸움에 동원되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법에서도 금지된 게 아닌가”라며 “지금은 21세기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긴 시간을 거쳐 바뀌어왔다. 문화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할 때 계승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