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감찰, 수사와 같은 시스템은 살아 있는 권력 입장에서는 몹시 불편해야 한다. 그것이 곧 헌법에서 선언한 법치주의고 권력분립원칙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역할을 해야 하는 시스템은 설치되었지만 제대로 작동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반복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을 돌이켜보자.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검찰의 국정원 댓글수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걸린 사안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고 범무부의 감찰이 착수되자 사퇴했다. 그러나 남은 수사팀은 징계(징계를 받은 팀장은 다름 아닌 윤석열 총장이다)를 받는 등 여러 난관을 딛고 관련자들을 기소하여 유죄판결을 이끌었다. 2013년 검찰은 분명히 권력을 견제하는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채 총장이 사퇴하고 검찰은 어느새 정권과 한몸이 되었다. 2014년 12월 돌출한 ‘정윤회-십상시 문건’을 덮어 버리고, 2016년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을 감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수사한 것도 역시 검찰이었다. 얼마 후 편안한 자세로 검찰에서 조사받는 우병우 수석의 사진이 등장했다.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2016년 겨울 광화문에 울려 퍼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추미애 장관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총장 한 사람만 바꾸면 검찰조직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검경수사권조정법안을 통과시키면서도 특수수사와 같은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을 고스란히 유지 시켰기 때문이다. 세간에 떠도는 ‘친정권’ 검사장 중 누군가를 총장으로 임명하여 검찰의 날카로운 칼날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있는 것이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든다.
바둑에 ‘봉위수기(逢危須棄)’라는 격언이 있다. 자신의 돌이 위험에 처하면 과감히 버리라는 뜻이다. 이미 감찰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가 부당하다고 의결했고, 여론조사결과도 추 장관에 대한 책임으로 기운 현실이다. 따라서 무리한 징계를 이끈 추 장관을 사임시키고, 윤 총장에 대해서는 그가 지휘했던 수사가 법원판결 결과 무리한 수사라는 것이 증명될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최선의 수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