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올라온 정보나 게시물, 사진 등을 삭제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 이모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엔 최근 ‘n번방’과 연관된 문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n번방’ 사건이 공론화하자 성 착취방을 운영·이용했던 이들이 관련 기록을 지우려는 시도에 나선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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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 등을 협박한 뒤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이른바 ‘n번방’을 이용한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숨기고자 디지털 장의사 등을 찾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경찰 수사가 유료 회원까지 번지자 자신들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초조함에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순을 시작으로 디지털 장의사 업체에 접수되는 ‘텔레그램 기록 삭제’ 문의가 늘어났다. 당시는 ‘박사’ 조주빈(25)이 체포된 뒤 ‘신상공개’를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으로 ‘n번방’ 사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집중된 시점이다. 텔레그램은 ‘n번방’ 운영자·이용자들이 주로 사용했던 온라인 메신저다.
또 다른 디지털 장의 업체 관계자도 “처음엔 인터넷 기록 삭제라고 문의를 접수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체적으로 텔레그램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며 “‘n번방’ 사건이 보도된 이후 홈페이지에 접속자가 몰려 다운되기도 했지만, 텔레그램 기록 삭제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n번방’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기록을 삭제하고자 하는 ‘n번방’ 이용자들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텔레그램 기록 삭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 장의 업체인 탑로직 박용선 대표는 “삭제할 수 있는 건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공개 게시물”이라며 “게시물 때문에 구체적인 권리 침해 사실이 있어야지 위임을 받아 삭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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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 역시 자신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n번방’ 또는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했다면서 △수사 기관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지 △신상정보가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지 △적발된다면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단순 시청만 했는데도 처벌을 받느냐’는 문의가 가장 많이 접수되고, 자신을 유료 회원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보통 처벌 수위나 구속 가능성 등을 물어본다”며 “심지어 일부 이용자들은 자수하면 처벌이 줄어드는 지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법무법인 등에 법률적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경찰은 ‘n번방’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일까지 성 착취물 제작·유포 사건 98건을 수사해 140명을 검거했다고 2일 밝혔다. 또 해당 영상을 다시 유포하는 행위나 다른 불법 성적 영상물 유포 행위에 대해서도 경찰이 들여다보고 있어 경찰 수사 대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