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①최중경 회장 "회계가 투명해지면 아파트 관리비도 준다"

외감법 개정 이끌어 내 회계 투명성 제고
아파트·학교·NPO 감사공영제 도입 추진
지배구조 개선 시급‥정부도 사적자치 존중
  • 등록 2018-04-17 오전 7:36:26

    수정 2018-04-17 오전 7:36:26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인터뷰
[이데일리 장순원 고준혁 기자] “아파트나 학교, 기부금을 모금하는 비영리단체(NPO)는 일반 기업보다 훨씬 더 공익적인 영역입니다. 국민 생활과도 밀접해 있고요. 그런데 회계사를 자유롭게 뽑아 회계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는 사람이 판사를 지정하는 시스템이죠. 회계감사 공영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이하 한공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중경 회장은 비영리분야도 회계처리가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좋은 일 하려 기부금을 내는 것들은 우리 삶의 기초적인 부분이다. 이런 영역의 회계 투명성이 강화된다면 삶의 질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면서 반드시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회계 투명성 업그레이드‥특유의 추진력 통했다

최 회장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포함해 30년 넘는 경제관료 생활을 하면서 탁월한 상황판단 능력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인회계사회 회장을 맡은 뒤 회계제도개혁의 핵심인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전면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며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기업의 외부감사인을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가 핵심이다. 자유롭게 감사인을 지정했던 기업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여서 회계업계 내부에서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최 회장이 감사인 순환지정제와 표준시간감사제를 제안하며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국회에서 외감법 개정안을 심사하던 날, 새벽에 집에서 기르는 서양란에 꽃이 피었지 뭡니까. 워낙 드문 일이라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개정안이 통과된 겁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젖은 최 회장은 “공인회계사회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고, 많은 분들이 도와줘 가능했다”며 공을 주위로 돌렸다.

최 회장이 최근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아파트나 학교, NPO 같은 비영리분야 회계 처리의 투명성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곳인데도 회계 관리가 엉망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현행 제도는 겉으로 봐서는 그럴 듯 해도 속을 들여다보면 구멍이 많다. 현재 모금액 100억원 이상인 공익법인은 필수적으로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고 지난 2015년부터 300세대 이상 아파트에 대한 외부회계감사도 의무화했다. 그런데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NPO 등이 회계사를 선택할 수 있어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공성이 강한 분야부터 회계감사 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주장이다. 공영제는 정부부처 또는 지방자치단체, 별도 위원회에서 비영리법인과 이해관계가 없는 적격감사인을 선임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은 “많은 국민이 아파트에 살면서도 관리사무소가 제대로 일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제일 싼 페인트를 쓰고 비싼 페인트 비용으로 회계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회계사들이 이렇게 새는 돈을 찾아내면 관리비가 내려가고 주민의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재단은 돈을 버는데 학생은 학비를 내려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이라면서 “회계 투명성이 올라가면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가 인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계감사 비용은 기업가치 높이는 투자”

최 회장은 올해 회계관련 법률 개정 사항을 뒷받침하는 데도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정부가 외감법 시행령을 마련하면서 핵심인 지정제의 예외를 최소화한 만큼 회계감사기준과 표준감사시간제 등 후속작업을 마무리해 외감법 입법 취지를 뒷받침한다는 방침이다. 표준감사시간제는 일정 시간 이상의 감사시간을 투입하도록 한공회가 업종별 표준감사시간을 정하는 것으로, 감사보수가 낮아지면서 감사 품질이 저하되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다.

물론 기업들 입장에서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가 도입되면 감시망이 촘촘해지고 비용도 늘 것이란 우려가 크다.

최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와 감사인 지정제는 역함수 관계다. 기업 지배구조가 0점이면 100% 지정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배구조가 미흡하니 주기제로 하면서 감사품질도 높이고 지배구조 개선도 함께 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면서 “(지정제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극약처방이라기보다 현실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회계감사 품질이 개선되면 회계 부정이나 변칙처리를 막을 수 있고 경영 컨설팅까지 가능한데다 주주입장에서도 대리인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서 “회계감사 비용을 기업가치 높이는 투자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작업도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표적인 게 가족경영의 폐해다. 안팎에서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가 어려워 사주의 독단에 휘둘리기 쉬운 구조라는 점에서다.

그는 “기업은 경영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데 (경영자) 인력 풀이 가족으로 제한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사주가문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경영진 전문가의 인재풀을 넓히고 경영권을 위임하는 식의 시스템을 접목한다면 가족경영이라고 해서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대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시스템 경영을 잘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대해서도 “방향성은 동의하지만 사적 자치는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부가가치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은 개입하더라도, 사적자치 방식으로 큰 문제 없이 굴러간다면 이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는 6월 임기가 끝나는 최 회장은 연임 도전 여부에 대해 “회원들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면서 “외감법의 세부내용을 다듬고 감사 공영제를 도입하려면 일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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