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공무원]②官이 내준 자리, 절반을 '폴리페서'가 챙겼다

본지, 공운위 지정 공공기관 316곳 전수 조사 실시
세월호後 교체된 기관장 84명중 42명이 교수·연구원
연내 47곳 기관장 임기 종료..폴리페서 더 중용될 듯
  • 등록 2015-03-05 오전 6:10:12

    수정 2015-03-05 오전 9:26:47

[세종= 이데일리 윤종성 방성훈 김상윤 기자] 지난해 10월 박종록 전 울산항만공사 사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가 떠난 후 사장으로 선임된 인물은 강종열 울산대 경영학부 교수. 국토해양부 출신으로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분류되던 박 전 사장이 떠난 자리는 공직 경험이 전무한 대학 교수 몫이 됐다.

오영태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비슷한 시기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교통안전공단 역시 국토교통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일영 전 이사장을 떠나보내고 대학 교수를 새 수장으로 맞이한 것이다. 정상호 전 이사장과 김종희 전 이사장, 박남훈 전 이사장 등 국토부 출신들이 주름잡던 공단에서는 생소한 풍경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1급)을 지낸 A씨는 지난달 진행된 퇴직공직자의 취업심사에서 ‘취업 제한’ 판정을 받았다. 그가 취업하려던 곳은 한국공정경쟁연합회로, 취업제한 기관으로 분류된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관피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A씨는 공정위를 떠난 뒤 1년째 적을 두지 못하고 있다.

관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공공기관장 자리가 ‘폴리페서(Polifessor, 정치+ 교수)’에게 넘어가면서 공공기관장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퇴직 공직자의 공공기관행은 거의 명맥이 끊겨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꿰찬 사람들이 정치권에 발을 담근, 이른바 ‘폴리페서’들이다.

특히 이달 31일로 한층 강력해진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폴리페서들은 더욱 득세할 전망이다.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이 막힌 상황에서 남는 인재 풀 자체가 대학 교수 외에는 찾기 힘들 정도로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장 지형도가 바뀐다..관료 대신 ‘교수’

5일 이데일리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 의해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316곳 전체를 전수조사 방식으로 살펴본 결과, 기관장이 교체된 공공기관은 총 84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절반인 42곳의 기관장이 폴리페서로 분류될 수 있는 교수· 연구원 출신 인사였다.

세월호 이후 관료들이 기관장에 선임된 경우는 15건에 불과해 전체 기관장 인사 중 17.9%에 그쳤다. 그 외에 △정피아(정치인+마피아) 12건 △기업 출신 9건 △내부 출신 6건 등으로 나타났다. 폴리페서의 득세는 지난해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과 부패 척결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관피아 척결 의지를 내비친 뒤 더욱 강해졌다.

이는 세월호 사고(4월16)와 박 대통령의 관피아 척결 발언(5월19일) 사이에 벌어진 6건의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단행된 6명의 기관장 인사중 신용선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황성휘 축산물안전관리인증원장,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장, 한홍전 한국국방연구원장 등 4명이 소위 말하는 ‘관피아’였다.

같은 기간 폴리페서가 기관장에 오른 경우는 2012년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기영화 숭실대 교수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에 발탁된 것 외에 없었다. 폴리페서 출신 기관장이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관피아 척결’을 외친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부터다.

변추석 등 공공기관장 자리 꿰찬 42명의 교수들

대표적인 폴리페서로는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꼽힌다. 변 사장은 광고대행사 근무를 거쳐 현재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인물,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미디어홍보본부장을 맡아 ‘ㅂㄱㅎ’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대선 슬로건과 PI(Presidential Identity)를 만들어 주목받았고, 관광공사 사장까지 올랐다.

이창섭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도 대표적 ‘폴리페서’다. 대전 대덕 출신인 이 이사장은 1983년부터 충남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1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원 조직인 대전희망포럼 대표를 맡았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대전 대덕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이밖에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화여대 교수),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창원대 교수), 이영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서울과기대 교수), 오영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아주대 교수), 주성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오승종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홍익대 교수), 강종열 울산항만공사 사장(울산대 교수),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포스텍 교수) 등이 세월호 이후 기관장에 발탁된 주요 교수 출신 인사들이다.

한전 등 47곳 기관장 임기 연내 종료..향배는?

폴리페서들의 득세는 이달 31일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발효 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층 강화된 취업 제한 규정으로 퇴직 관료들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인재 풀이 교수 쪽에 치우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굵직굵직한 공기업· 공공기관 등 기관장 47명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어 폴리페서들의 추가 발탁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올해 기관장 임기 만료가 예정된 47개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체육산업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정보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 4곳은 기관장 임기가 이미 끝나, 기관장 공모 절차 등을 밟는다. 최대 공기업 중 하나인 한국전력(015760)공사 조환익 사장의 임기는 올해 12월이면 만료된다. 한전의 발전자회사인 중부발전과 동서발전 사장의 임기도 각각 7월, 11월까지이다.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임기도 오는 5월로 종료된다. 석유공사 최초로 내부 발탁됐던 서문규 사장의 임기는 오는 8월까지이고, 장석효 사장의 해임으로 공식이 된 한국가스공사 사장도 서둘러 뽑아야 한다. 검찰 출신인 정대표 한국소비자원장의 임기도 오는 9월 만료된다.

이밖에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문화정보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산항만공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이 올해 안에 임기 만료로 기관장이 갈릴 예정이다.

◆용어설명

△삼포(三抛) 공무원= 재취업, 승진, 고액연금 등 세 가지를 포기한 공무원을 일컫는 신조어다.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공직자윤리법‘,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등 사회적 압박이 강해진 상황에서 공무원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내뱉는 단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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