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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 관우의 덕을 입은 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구전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황제 만력제 꿈에 관우가 나타나 조선을 도우라고 해서 명군을 파병했다고 한다. 명의 장군 진린(陳寅)이 전투에서 다치고 회복하면서 관우의 도움을 받아서 관왕묘 건립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조선의 왕은 동묘를 찾아 관우를 기렸다. 숙종(1674~1720년)은 능을 행차하면서 동묘를 찾아 제를 올렸다. 현재 동묘는 관우 목조상과 친족 4명을 봉안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963년 1월 동묘를 보물로 지정했다.
남관왕묘(南關王廟)도 같은 시기에 생겼다. 마찬가지로 남쪽에 있는 관우를 기리는 사당이다. 기록으로는 숭례문 인근에 지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이후 동작구 사당동으로 옮겼으나 이마저도 개발돼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관우는 중국에서도 존경받아 숭상되는 인물이다. 산시성 윈청시에 있는 하이저우 관제묘는 세계 최대의 관우 사당이다. 재물을 상징해서 중국에서는 흔히 관우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