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내딘 검경 수사권 조정…터져나오는 우려 목소리

검찰권은 제한되고 경찰은 수사종결권 얻어
이용구 폭행사건·정인이 사건으로 경찰 역량에 '물음표'
경찰이 내사종결·불기소처분 내리면 사실상 번복 불가
국수본 출범했지만 조직 구성도 안 끝나
  • 등록 2021-01-18 오전 6:00:00

    수정 2021-01-18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지난 1일부로 가동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모양새다. 내사종결로 논란이 된 이영구 법무부 차관 폭행 사건과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벌써부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상대적으로 권한이 축소된 가운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인권보호’를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개혁의 목표로 보고 있다.

서울 서초구 누에다리에서 바라본 대검찰청, 서초경찰서, 서울고등검찰청 및 서울중앙지검의 전경. (사진=뉴스1)
제한된 검찰권…박범계도 ‘인권 검찰’ 강조

지난해 10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안이 공포된 지 3개월 만인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범죄 등 6가지 영역이다. 기존에는 검찰과 경찰 어느 쪽에 사건을 고소·고발해도 상관 없었지만 이제는 범위 외 사건을 검찰에 고소·고발하면 반려되거나 경찰로 이송된다. 그러다보니 일선 검사들은 연초 이월된 미제사건 중 수사 범위 외 사건 처리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사건 자체가 적은 지방 소재 검사들은 한가하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다.

향후 검찰은 권한이 축소된 대신 인권보호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특히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법 위반 등이 있었다면 검찰은 경찰에 시정을 요구하거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라 요구할 수 있다.

더욱이 박범계 후보자는 최근 자신의 SNS에 “검찰이 개혁돼야 인권이 보호된다”며 “인권보호가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2021년 수사권조정 시행 이전과 이후의 변화”라는 글을 올렸다. 검찰이 기존에 강력한 권한을 토대로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범해왔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인권을 위해 검찰권을 절제해야 한다는 추미애 장관과도 동일한 자세다.

16개월 정인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종료된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시민들이 양모 장모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소 차량이 나오자 가로막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경찰 수사종결 역량에 우려…불기소의견은 매년 40% 꼴

문제는 경찰이다. 현 시점에선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이다. 최근 논란이 된 사건들로 인해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만한 역량이 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구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과 정인양 사망 사건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용구 차관은 차관 임명 전이었던 지난해 11월 6일 밤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깨우려는 택시 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일선 파출소에선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적용했다. 그러나 사건을 접수한 서초서는 이 차관에게 반의사불벌죄인 단순 폭행죄를 적용하고 피해자가 이 차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했다.

만약 이 차관 사건을 내사종결하지 않고 정식 입건했다면 단순 폭행이라도 경찰의 불기소의견서를 검찰이 한번 더 검토하는 게 기존 수사 방식이었다. 그러나 바뀐 체제에선 정식 입건된 사건도 경찰이 자체적으로 불기소 의견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물론 현행 체계에서도 검찰이 불송치 기록을 보고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지만 1번만 가능하다. 경찰이 다시 같은 결론을 내리면 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셈이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정인이 사건 역시 양보모의 학대 의심 신고가 3차례나 있었지만 경찰은 내사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을 냈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경찰이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범죄자는 △2015년 81만 7923명 △2016년 78만 2348명 △2017년 69만 7687명 △2018년 68만 2820명 △2019년 70만 7897명으로 5년간 전체 수사 대상의 39.2%에 달한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국가수사본부 현판식이 열렸다. (사진=방인권 기자)
검찰 안팎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현직 검사는 “최근에 경찰에서 올라온 한 사건 보고서를 검토하는데 한 페이지만 해도 오타가 수두룩했다”며 “그동안 결재만 하던 일선서 과장들로 수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 때문에 경찰에서도 젊은 과장들을 수사 부서에 배치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전세계적으로 처음하는 실험인데 형사사법 수사현장에서 대혼란이 불가피하다”며 “온전히 국민이 감당하게 될 몫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우려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경찰에서 새롭게 설치한 기구가 국가수사본부(국수본)다. 국수본은 경찰의 전반적인 수사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경찰은 새해 국수본 출범과 함께 자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만큼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수본은 주요 1차 수사권 행사 기구로 경찰 단계 수사를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본부장이 공석인 것을 포함해 아직까지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초대 국수본부장 자리엔 백승호 전 경찰대학장, 이정렬 전 판사 등 5명이 지원했다. 이 중 적임자가 없을면 내부승진 가능성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수본과 자치경찰제 도입 후 국민중심 책임수사 체제를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 목표”라며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혼선이나 시행착오가 없이 차분하게 시행하고 있고,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부실 수사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의 잘못으로 사건 처리가 잘못되고 국민이 피해를 입는 사안이 단 한 건이라도 없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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