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T.의 ‘2018 포에버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 콘서트’ 중 한 장면(사진=솔트이노베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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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규 대중문화 평론가] 오륜마크가 선명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이틀 밤을 꼬박 뒤척였다. 그리고 17년이 흘러 그 자리에 엄마가 된 40세의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팬들까지 대규모 합세했다. 하얀 옷과 풍선은 물결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1세대 아이돌그룹 H.O.T.의 ‘2018 포에버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 콘서트’(Forever Hifive Of Teenagers Concert)가 열린 지난 13일과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일대의 풍광이었다.
2001년 해체 후 17년 만의 재회는 깊고 넓었다. 주최 측 추산 10만 관객이 운집했다. 20여곡에 이르는 H.O.T.의 레퍼토리는 팬들의 함성과 눈물 사이로 경기장을 자욱하게 채웠다. 그룹 H.O.T.는 지난 1996년 데뷔해 아이돌 그룹 1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데뷔 5년 만인 2001년 돌연 해체했다. 이후 17년이 지났지만 팬들의 결집력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미래가 불확실하던 학창시절, 어깨에 기댈 수 있게 허락했던 그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브라운관 너머로 위로를 건네고 청년시절의 불안한 길을 함께 걸어준 그들이었다.
| H.O.T.의 ‘2018 포에버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 콘서트’ 중 한 장면(사진=솔트이노베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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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가요계를 평정했던 1세대 아이돌그룹들의 재결합 소식은 우리 문화계에 여러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당시 10, 20대 팬들은 30, 40대가 됐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핵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대로 성장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들이 어떤 문화콘텐츠에 열광하는지를 조망하는 일은 우리 문화시장 변화의 판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특히 1990년대는 라디오시대의 듣는 음악에서 비주얼에 대한 관심이 증폭한, 보는 음악이 고개를 든 시대였다.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의 교차 지점에 접어든 1990년대는 그야말로 대중음악의 중흥기였다.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대거 생산한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재조명하고 재해석될, 할 말이 많은 시대였다.
더불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아이돌이 서로 경쟁하며 팬클럽문화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도 1990년대였다. 듣고 볼거리가 많은 시대였다. 더불어 ‘문화적 추억’이 더 많이 쌓여갔다. 문화계 전반에 ‘웰메이드 상품’이 많았다. 그것은 ‘1990년대 콘텐츠’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힘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이어진다.
| H.O.T.의 ‘2018 포에버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 콘서트’ 중 한 장면(사진=솔트이노베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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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성장기에 영향을 줬던 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위안과 스스로의 격려는 세월이 흘러도 잔존하게 마련이다. 당시 돈을 타쓰며 눈치 보던 세대는 이제 고가의 콘서트 티켓을 당당히 구매하는 문화의 핵심 소비자가 됐다. 1990년대의 음악이 세월을 견디는 까닭이다.
추억의 되새김질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무색하게 할 만큼 결과는 호조다. 2000년 전후로 아이돌 그룹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무대 위의 안무와 콘셉트도 급진적인 행보를 거듭해 왔다.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재패하는 결과도 연장선상 위에 놓여 있다. 화려한 귀환을 시도하고 있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은 오늘의 K팝 한류 기반을 만든 초석이 됐다. 당시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차별화가 만들어낸 성공한 콘텐츠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 그룹 H.O.T.의 자존감은 우리 대중문화계 지형도에서 혁혁한 성과다.
10만 관객에게 울려 퍼진 그들의 음악을 상기한다. 17년이 흘러도 그 소리는 팬들에게 또렷이 박제된다. 그리고 불멸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