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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재작년 9월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이 이 대표를 부르기까지 1년 4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무슨 일이
대장동 의혹 수사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으슥한 지하 주차장에서 유력 정치인이 현금다발을 몰래 건네받는 쪼잔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행 현장이 CCTV에 찍혀서 단번에 유죄가 입증된다면 검찰도 재판장도 기자도 모두가 행복한 칼퇴근 워라밸을 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은 ‘실수’와 ‘범죄’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 있어 골치 아픈 사건이 됐습니다. 법은 단순한 실수를 범죄로 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은 2015년 처음 준비할 단계부터 막대한 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설계할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공)는 최종적으로 이익이 얼마가 발생하든 1822억원만 챙기기로 정하고, 나머지 이익은 그냥 민간사업자들이 모두 가져가라고 합니다. 이익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면 그만큼 성남도공도 추가로 돈을 챙길 수 있도록 ‘약속’해야 하는데 어찌 된 까닭인지 이 약속이 ‘쏙’ 빠져버렸습니다.
대장동 개발이 마무리되고 성남도공은 미리 약속돼있던 1822억원을 챙기긴 했지만, 문제는 민간업자들이 무려 4040억원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성남도공은 마땅히 챙겨야만 했던 막대한 이익을 눈뜬 채 놓쳐버린 셈입니다. 검찰은 이 잘못된 약속 탓에 성남도공이 최소 1827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계산합니다. 성남도공의 재산은 곧 성남시민의 재산이죠. 사실상 성남시민들이 큰 손해를 본 셈입니다.
이제부터 골치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민간업자들은 애초에 자기들이 이렇게 막대한 초과이익을 독차지하게 될 줄 몰랐으며, 이런 ‘초대박’은 순전히 ‘실수’였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 측도 입장은 같습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는 1822억원이면 충분한 이득일 줄 알았는데 어느 새 땅값이 너무 뛰어서 계산을 실수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초대박이 사실은 실수가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고, 성남도공이 ‘일부러’ 손해 보는 약속을 한 것이었으면 어떻게 될까요? 법의 신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주범의 정수리를 향해 정의의 철퇴를 내리칩니다.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일을 형편없이 처리하고 엉뚱한 자가 이익을 누리게 하면 이른바 ‘배임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불거지고 검찰이 수사에 돌입하자 이 수상한 초대박이 사실은 ‘계획된 음모’였을 수 있다는 정황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검찰은 관련 증거들을 여럿 확보하고 사건에 관계한 성남도공 관계자, 민간업자들을 줄줄이 구치소·법정에 보내버립니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대장동 사업의 총책임자였던 이 대표가 과연 이 음모를 몰랐냐는 것입니다. 이 대표는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중요한 사안을 직접 보고받고, 서류에 도장을 찍었지만 ‘아랫것들이 몰래 벌이는 나쁜 짓을 어떻게 일일이 다 알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하기야,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단속 못 한 건 그 자체로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던 중 이 대표의 왼팔·오른팔로 불리는 오랜 최측근 두 사람이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납니다. 게다가 돈을 받은 시점도 하필이면 이 대표의 선거를 앞두고 돈이 아주 많이 필요했던 때입니다. 정말로 이 대표는 자신의 왼팔·오른팔이 뒷돈을 챙기는 사실을 몰랐을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가 계속되던 중 또 하나 치명적인 의혹이 제기됩니다. 민간업자들이 챙긴 4040억원의 이익 중에 ‘이재명 측 몫’으로 따로 빼둔 금액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수상한 초대박’은 이 대표의 실수가 아니라 계획된 범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남시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할 이익을 빼돌려 자신과 공범들의 주머니로 몰아넣으려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장동 비리 의혹은 ‘실수’를 가장해 이익을 챙긴 구조이기 때문에 범죄사실을 입증하는데 치밀한 조사와 방대한 자료들이 필요합니다. 피의자가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정답인 줄 알았다”고 우기더라도 사업이 시작된 2015년 당시 실제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표는 지금도 대장동 개발 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고 치켜세우며 배임죄를 지을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합니다. 검찰은 그런 이 대표를 ‘죄를 지은 것으로 의심되는 자’로 규정하고 2차례 소환을 예고했습니다. 2015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속내를 입증하는 쉽지 않은 작업을 검찰이 매듭지을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