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금감원장이 언급한 '퍼펙트스톰'의 의미

정은보 금감원장, 취임 때부터 '퍼펙트스톰' 언급
대내외 부채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
우리 경제 탄탄하나 '시장심리'는 언제든 급변동
금융권 수장의 단어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
  • 등록 2021-10-02 오후 12:00:00

    수정 2021-10-02 오후 12:00:0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퍼펙트스톰’이라는 단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냥 언론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8월 취임부터 ‘퍼펙트스톰’이란 단어로 현 경제상황을 우려했고 이번 주부터는 관련 태스크포스(TF)도 만들어 운영키로 했습니다.

금융감독원 하면 무시무시간 감독 기관으로 알고 있겠지만, 민간 기관으로 금융사들의 일탈 행위를 사전에 막고 때에 따라 징계를 건의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이곳 수장이 퍼펙트스톰을 우려하고 언급할 정도라고 하니,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이긴 합니다.

퍼펙트스톰이란 단어는 이번에 새삼 쓰인 것은 아닙니다. 저 멀리로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예견하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가까이로는 2017년 이후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때 경제 전문가들이 쓰곤 했습니다.

사진 : 픽사베이, Keli Black
2017년 정도라고 하면 중국 부동산 부채 부실화 문제가 외신을 통해 꾸준히 경고되던 때였습니다. 2018년 들어 국내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거품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도 퍼펙트스톰이 올 수 있다는 의견이 개진됐습니다. 때마침 2019년 하반기에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선진국 채권 시장에서 나타났습니다. 불황이 예고되던 시점인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집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 때의 예견은 어느 정도 맞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퍼펙트스톰이란 단어는?

퍼펙트스톰이란 단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썼던 말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때도 미국 부동산 시장 경기가 고점을 지나 식어가던 때였고,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를 보고 금융업권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루비니 교수는 예견했던 것입니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
지금 보면 대단한 예견으로 보입니다. 물론 루비니 교수가 세계적인 경제석학이긴 합니다만 경기 순환에 있어 ‘호황’이 있으면 ‘불황’이 오기 마련입니다. 호황으로 인식되는 시점에 ‘불황’을 예견하고, 불황이 심화되는 구간에 ‘호황’을 예상하면 대단한 경제 예견가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고장난 아날로그 시계도 하루에 두 번 정확한 시간을 맞추긴 하죠.

매번 암울한 경기 전망을 해 ‘닥터 둠’ 별명을 얻은 마크 파버나 우리나라 진보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선대인 박사도 꾸준히 경기 하락 혹은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를 지적해왔습니다. ‘위기론’에 민감한 대중들이 듣기에 솔깃한 얘기였습니다.

쉽게 말해 ‘떨어진다, 떨어진다’를 외치다보면 언젠가 떨어지게 되고 ‘맞는 예견’이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를 듣는 사람들의 감각은 시간이 갈 수록 무뎌진다는 점입니다. 중간중간 예견이 틀린 것처럼 나면(부동산 가격 거품을 지적함에도 계속 가격이 오른다거나) 이런 경고는 무시되기 일쑤입니다. 어느샌가 시장 비관론자들은 양치기소년이 됩니다.

금감원에서 ‘퍼펙트스톰’을 얘기하고 정부 당국이 관련해서 회의도 열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도 보면, ‘보다 강력한 경고’를 하려는 의도와 맞닿아 보이기도 합니다. 얌전하게 말해서는 통하지 않으니 일종의 ‘충격 요법’을 주려는 것도 있어 보입니다.

헝다와 테이퍼링 그리고 유럽

사실 최근 이들의 걱정을 보면 괜한 기우는 아닙니다. 조금더 정확히 보자면 대외적인 타격이 온다면 우리 가계가 받을 타격이 크게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런 금리의 상승이 우리의 바람과 달리 점진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위기의 국면이 되면 항상 급등합니다. 정부와 가계, 기업이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1997년말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와 기업이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한 데에는 국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금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외화를 구해오는 비용을 ‘금리’라고 한다면, 한국 경제에 불안을 느낀 외국 전주(錢主)들이 그 비용을 한꺼번에 급박하게 올린 탓이 큽니다.

사진 : 나무위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했던 2020년 2~4월 우리 금융사들과 금융 당국이 우려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외화 유동성이 말라 크게 긴장했습니다.

결국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해외 전주들이 몸을 사리느라 우리 금융사에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하거나 조기 상환을 요구, 혹은 금리를 올려버리면 우리 경제가 받는 충격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금융사가 돈을 구하기 힘들어지면 연쇄적으로 기업과 가계가 부담해야하는 금리는 치솟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교훈에 따라 각국 은행들이 금리를 낮추고 돈 풀기를 하면서, 시장 심리를 안정시킨 덕분에 그런 걱정은 기우가 됐습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문제는 각자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면만 본다는 점입니다. 시장 비관론자들은 시장심리를 악화시킬 수 밖에 없는 부정적인 면만 보고 ‘위기론’을 외칩니다.

부동산 부채가 많은 자산가나 혹은 투자 자산이 많은 트레이더, 이들의 이익에 부합돼야 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은 우리 경제의 탄탄한 면만 보며 ‘긍정론’을 이야기 합니다. 최근 헝다 사태가 알려지자 애널리스트 리포트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이런 예상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직전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리먼브라더스사태가 일어나도 나왔습니다. ‘크게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앞으로 괜찮을꺼야’라는 전망이 시장 불안심리를 가라앉혀 더 큰 위기를 불러오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위기’ 앞에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장에는 비관론과 긍정론이 늘 상존했지만…

정리하겠습니다. 시장에는 언제나 비관론과 긍정론이 교차하기 마련입니다. 투자자는 어느 한 의견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선택은 달라집니다.

예컨대 부동산 부채가 많은 사람이라면 ‘금리는 올라가지 않는다’라는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이고, 집 없는 세입자라면 ‘금리가 올라가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라는 전문가 의견을 더 들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만 ‘비관론’과 ‘긍정론’의 빈도와 무게를 따져보고, 그에 따라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는 분명 있어 보입니다. 지금껏 긍정론을 펼쳐왔던 전문가가 비관론을 펼친다던가, ‘말 한마디’가 매우 신중해야할 금융권 수장들의 입에서 불안감 섞인 단어들이 나온다면 말이지요.

금감원장이 언급한 ‘퍼펙트스톰’은 경기순환 곡선에서 나올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예견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겁게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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