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고적도보’의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 복원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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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소는 현실적으로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동물 중 하나면서도, 시대에 따라 왕이 타던 최고급 승용동물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동물이었다.”
동물민속학 전문가인 천진기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특임연구관은 2021년 신축년의 수호동물인 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십이지 동물의 생태적 특징을 새해 운, 사람의 성격에 결부하는 독특한 문화를 가져왔다. 올해는 소의 해다. 소라고 하면 농촌에서 논밭을 가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원시 유적들에 담긴 소의 흔적부터 고분, 그림 등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소의 흔적은 고대사회부터 발견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소를 한 집에서 식구처럼 길렀는데 주로 제천의식이나 순장용으로 사용했다. ‘삼국지위지동이전’, ‘진서동이전’ 등에 따르면 부여에서는 관직명과 군사를 일으킬 때 길흉을 점치기 위해 소를 이용했다. 삼한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했는데 순전히 장례의 순장용으로 소를 길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소가 달구지를 끌고 있는 모습,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는 모습, 견우직녀 이야기, 농사신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특히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고분인 쌍영총(5세기 말)에는 소가 왕이 타는 최고급 승용동물로 묘사돼 있다. 쌍영총 동쪽 벽화에는 화려한 우차를 끌고 있는 늠름한 소가 등장한다. 천 연구관은 “풍경을 단 큰 지붕을 씌우고 내외를 장식한 호화로운 승용 가마를 소가 끌고 있다, 아래에는 여인 3인과 그들 쪽을 향한 남자가 우측에 보인다”며 “밭을 가는 소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데, 일견 왕용임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 물소를 닮은 ‘신라 토우’(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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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도 소와 관련된 작은 토우들이 남아 있다. 그 예는 아주 적으나 모습은 아주 당당하면서도 오늘날 한국 소와 다소 다르다. 길고 요란하게 뻗은 뿔을 가진 것이 마치 물소와 비슷하다. 천 연구관은 “좌우에 떡 벌린 앞뒤의 발이 아주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약간 숙인 듯한 머리는 보다 더 저돌적인 인상을 풍기게 한다”며 “대체로 신라의 토우에서 보이는 소들은 얼굴 끝이 뾰족하고 뿔이 안쪽으로 휜 듯한 모습”이라고 묘사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소 관련 기록이 몇 가지 나타난다. 신라 파사왕 5년(84년)에 고타군수가 청우(靑牛)를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천 연구관은 “이 청우는 털 빛깔이 검은 소로 추정된다”며 “중국 문헌에서 늙은 소나무의 정이 청우가 된다고 한 것으로 봐 청우는 선인·도인·성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소는 각별한 영물로 인식됐다. 당시 선비들은 속세를 떠나 아무런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선계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우직하면서도 여유로운 천성의 소는 이런 모습을 대표했다. 이에 소는 선비들의 시문, 그림, 고사에 자주 등장했다. 소를 잘 그린 조선시대 화가로는 김제, 이경윤, 김식, 윤두서, 조영석, 김두량, 김홍도, 최북 등이 있다.
그림 속에는 소를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천 연구관은 “소를 탄다는 것은 권세를 버리고 초야에 묻혀 글과 시·술·경치와 방랑으로 산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며 “이처럼 소를 탄다는 것은 한국인의 질박한 낭만과 직결된 정서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