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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팍팍한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에서 우리 모두는 ‘자르거나’ ‘싸우거나’ ‘버티는’ 누군가이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 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1970년대의 노동환경을 폭로하고 고발하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40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삶의 수준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노동현장의 또 다른 비명소리는 여전히 곳곳에서 들려온다.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으로 스타작가 반열에 올라선 장강명(44) 작가가 연작 소설집 ‘산 자들’(민음사)로 돌아왔다. 알바생·철거민·자영업자 등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현 시대의 노동과 경제문제를 다뤘다.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시티 내 한 카페에서 만난 장 작가는 “갑과 을이 아닌, 을과 을끼리 서로 억압하고 감시하며 사는 지금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왜 이토록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현장이 빚어졌는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집필배경을 밝혔다.
△치열한 삶의 현장 담아내
소설은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총 10편의 단편소설에 무제한 스트리밍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는 뮤지션(‘음악의 가격’)과 승자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는 빵집 이야기(‘현수동 빵집 삼국지’) 등을 현실감 넘치게 담아냈다. 제목인 ‘산 자들’은 단편 ‘공장 밖에서’에 나오는 표현이다. 경영악화로 정리해고 바람이 불어 닥친 공장에서 해고 대상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을 ‘죽은 자들’로 칭하고, 해고 통보를 받지 않은 이들은 ‘산 자들’로 부른다.
장 작가는 최악의 경제적 약자를 ‘취준생’이라고 했다. 심지어 이들을 착취해서 돈을 버는 사업들이 많다는 사실이 씁쓸하다고 했다.
△차기작은 범죄소설…“불합리한 시스템 들여다볼 것”
장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로 11년간 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기자 출신이어서인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면 이를 소설로 쓴다고 한다.
장 작가는 “기자출신 작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기대감을 가지는 것 같다”며 “이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산 자들’ 뿐 아니라 SF소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도 동시에 출간했다. 차기작으로는 범죄소설을 준비 중이다.
“문제의식을 떠올린 후 이를 알맞은 서사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나에게 일반소설과 SF소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인자동차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것들을 10년 전에 썼으면 SF소설이었을 거다. 현재 20년 전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내용의 범죄소설을 쓰고 있다. 판타지가 섞인 수사물이 아니라, 기자출신 작가가 썼을법한 현실성이 반영된 수사물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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