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예비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에어컨을 켠 채 가게 문을 열어놓고 장사하는 건 상식이 아니다. 비상식과 이율 배반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악성 바이러스’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문을 열어놓으면 손님 입장에선 가게 접근성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상가 안에서 물건을 고르는 소비자에겐 냉기가 덜 느껴질 수 있다. 전력요금도 더 나오고. 개문 냉방이 상인에도 소비자에게도 딱히 좋은 게 아닌데도 해마다 반복된다.
개문 냉방은 이 시대 대한민국의 자화상 같다. 애를 쓰는데 비해 효과가 크지 않고, 비판을 노여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최저임금을 올려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돌려주겠다는 정책은 선(善)하다. 그러나 약자들이 되레 피해를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불복 운동을 벌이고 있고,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겠다는 중소기업인들의 아우성이 커진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넘어 4만·5만달러로 도약하기 위해선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는 강조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3만달러 유지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소비자 유치를 위해선 에너지를 잔뜩 써도(개문 냉방) 문제없다는 게 정부 인식이 아닌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지 생각해 볼 씁쓸한 장면이 나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적 구속기관을 다 채우고 562일 만에 석방되는 날 구치소 앞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욕설과 몸싸움으로 난장판이 됐다. 여권 실세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특검 출석날 역시 시위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김 지사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특검에 나왔다. 방전되는 법치를 보는 것 같았다.
적폐청산도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개문 냉방처럼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처음으로 60% 밑으로 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보수 보단 낫겠지’란 국민들의 기대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혹시 “난 옳은 일이면 끝까지 밀어 붙인다”고 독선을 고집하는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리더들이 국력을 방전하면서 좋은 일이라고 밀어붙이거나 매사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보일 때 이런 생각이 든다. 반목과 갈등이 커지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