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돌이키면 아직 그때 느낀 희열로 몸이 달아오른다.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둔 오후 8시 55분 1·2번 폐쇄회로(CC)TV화면을 지나 3번 CCTV로 시선을 돌린 모니터에 찰나 검은 형체가 털썩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 40대 여성이 서울 구로구 구로리어린이공원에서 운동을 하다 갑작스레 심정지를 일으킨 것이다. 곧바로 뒷자리에 있던 서울 구로경찰서 생활안전과 소속 경찰관에게 긴급상황 발생을 알렸다.
이 경찰관이 구일지구대로 무전을 치는 동안 119에 전화를 걸어 출동을 요청했다.
대형화면으로 띄운 3번 CCTV 영상 속에서 함께 있던 중년 여성들이 번갈아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CPR)을 했다. 서둘러 경찰과 소방이 도착하기를 기도했다. 억겁 같은 3분이 흘렀을 무렵 구급차량이 도착했고 다시 2분이 흐른 뒤 순찰차량이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CPR로 환자의 숨을 돌린 뒤 들 것에 태워 구급차량으로 옮겼다.
그제야 4번 CCTV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인근 병원으로 가는 길목에 행여나 사고가 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은 관제실에서 일한다고 하면 영화 ‘슬로우비디오’(2014)를 떠올리며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정도로 시력이 좋은지 묻곤 한다. 나이에 비해 눈이 좋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영화 주인공처럼 시력이 탁월한 건 아니다.
밝은 형광색 조끼를 입고 모니터 앞에 앉을 때면 아이가 초등학교 때 활동했던 녹색어머니회 일원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등하굣길과 공원을 거니는 어린 학생들이 행여 다치진 않을지가 가장 눈에 밟힌다.
가끔 앉아서 쉽게 돈을 번다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다. 근무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 있고 응급한 일이 아니면 대형스크린에 띄우는 일도 별로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두 눈은 112개의 CCTV가 보내는 영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사실 1년간 관제실에서 근무하며 도움이 필요한 응급상황보다 관심이 필요한 안타까운 상황을 더 많이 지켜봤다.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과 만취한 노숙자 모두 가족과 사회가 관심을 둬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발견할 때면 계도방송을 요청한다.
내가 시민들에게 그랬듯 시민들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나를 포함해 구로구 학교·공원 방범 관제요원 9명은 모두 연말이면 용역업체와 계약을 걱정해야 한다. 시민의 안전을 지켜보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 일을 사랑하는 우리가 앞으로도 CCTV 너머 모니터 앞에 앉는 게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