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박자희의 적벽가

  • 등록 2020-10-15 오전 6:00:00

    수정 2020-10-15 오후 6:31:59

[유은선 국악 전문 작곡가] 지난 추석연휴 때 화제는 단연코 나훈아의 공연이었다. 자칭 트롯의 가왕(방송에는 ‘가황’이라 칭함)답게 나훈아의 등장은 모든 트롯 가요프로그램을 단번에 잠재울 만큼 위력이 컸다. 심지어 나훈아의 멘트는 정치권에서 인용할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났고, 나훈아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며칠씩 검색을 해 가면서 그의 과거 행적까지 추적해 냈다.

나훈아를 잘 아는 세대로서 그를 잘 알기에 본방 사수를 하면서 공연을 끝까지 지켜봤다. 역시 나훈아다운 무대였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가창력과 넘치는 에너지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국악인으로서 예전부터 그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의 무대에는 꼭 국악의 이미지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대취타를 소재로 한 곡이나 오고무(고전 무용의 하나. 사방에 걸어 놓은 다섯 개의 북을 치면서 추는 춤)를 활용한 무대를 선보인 것 등등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사실 가왕 나훈아는 본인의 콘서트에서 늘 오고무를 비롯한 국악적인 무대를 보여줘 왔다. 이날도 역시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물론, 북을 직접 연주하는 모습과 다양한 의상 중 멋지게 차려입은 한복을 보며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서두가 좀 길었지만 주된 관점은 우리 국악을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요즘 들어 젊은 국악세대들의 파격적인 변신이 놀랍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는 우려가 생긴다. ‘이런 곡들이 전부 전통 국악이라고 인식하면 어떡할까?’라는. 물론 기우일 것이다. 젊은 연주자들이라고 모두 같은 음악색깔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재미있는 국악을 접하고, 그 이전의 형태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리고 여기 추천할 만한 공연과 연주자를 꼭 소개하고 싶다.

박자희라는 소리꾼이 있다. 늘 무언가에 열심히 성실하게 소리공부를 하고 있는 여자소리꾼으로 가끔은 국립창극단(객원으로) 무대에서도 만났다. 요즘의 성향을 반영한 팀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4월 25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는 박자희의 ‘적벽가’ 공연이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자신만만한 표정과 적절히 익은 ‘성음(聲音), 차곡차곡 쌓아온 공력의 소리 등 말 그대로 ‘소리를 갖고 놀 줄 아는 여유로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사실 ‘적벽가’는 소리 자체가 남성들의 성격에 맞게 짜여 있어서 예전에는 여자 소리꾼들에게는 안 가르칠 정도로 어렵다는 소리인데 박자희는 자그마한 몸에서 어찌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북을 대신해 첼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판소리와 서양악기가 만나는 공연이 처음은 아니지만 첼로라는 악기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적벽가의 긴장감과 스펙터클한 장면, 장엄함과 비장함 등을 너무도 적절히 표현해 소리 북 이상의 타악적 느낌을 매우 효과적으로 구현해 냈다. 박자희의 다소 허스키한 음색과 적절한 대(對)를 이루며 전혀 촌스럽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새로운 ‘일고수 이명창’의 역할과 ‘연출’, ‘음향’ 등의 다양한 역할을 ‘첼로’가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환상의 어울림이었다.

최근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 전공자들의 대중적인 분야로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국악의 저력을 알릴 수 있는 빠르고 중요한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하겠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소리꾼들이 행여 그런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박자희의 이런 활동과 소리꾼으로서의 발전은 우리 전통음악의 올곧은 계승이라는 점과 변화는 하되 그것이 발전적인 변화의 주역이 되었음을 알리는 희망을 전해주기에 더욱 반갑다. 박자희는 안숙선명창의 제자다. 부디 스승의 뒤를 잇는 ‘박자희 명창’으로서 뿐만 아니라 ‘스타 박자희’의 멋진 탄생을 위해 더욱 거듭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박자희 ‘적벽가’ 공연 모습(사진=서울 남산 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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