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제 온다]②전기차 혁명처럼...난치병 새희망+신약 개발 유리

난치병 새 해결책 제시, 뉴냅스 시각장애 개선 VR 앱
하루 30분씩 VR로 게임하듯 자극 반복 선별해 치료
저수가로 처방 못하는 인지행동교정 치료 가능해줘
임상·인허가 거치는 디지털 치료제 vs 공산품 웰니스
개발에 10년 3조 일반약 VS 디지털 치료제 5년 200억
전임상 없고 탐색 임상 및 확증 임상 ...
  • 등록 2020-08-05 오전 6:05:00

    수정 2020-08-06 오전 10:55:09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게임과 앱, 가상현실(VR)을 치료제로 처방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이 디지털 치료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이 치료제가 기존의 알약과 주사제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국내 스타트업 ‘뉴냅스’가 개발중인 ‘뉴냅비전’은 현재 치료법이 없는 시각 장애를 대상으로 한다. 이 병은 눈과 시신경에는 문제가 없지만 뇌졸중 등으로 뇌의 시각 담당 부분이 손상돼 사물을 보기 어렵게 한다. 국내에서만 매년 2만여 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다.

뉴냅스가 개발중인 디지털 치료제 뉴냅비전은 하루에 VR 기기를 쓴 환자에게 30분씩 특정 자극을 보내 환자가 이를 판별해 게임하듯이 응답토록 한다. 이런 반복 훈련을 통하면 시각 장애가 있는 환자의 뇌가 다른 부분을 통해 시각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돼 시야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나현욱 뉴냅스 이사(최고운영책임자)는 “기존 약으로 치료가 안 되는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다”며 “현재는 임상 목표 환자 84명 가운데 50명의 모집을 끝냈다”고 말했다. 뉴냅스는 지난해 7월 식약처의 임상허가를 받아 임상시험을 진행중이다.

뇌 손상 후 시야장애 개선 디지털 치료제로 개발 중인 뉴냅비전


저수가로 활용 못하는 행동교정 치료, 디지털 치료제로 부활

디지털 치료제는 또 기존에 있는 치료법이지만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문제 등으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표준 치료를 상대적으로 값싸게 제공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정신질환 치료에 필요한 행동교정(인지행동치료)이다. ADHD, 자폐증,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대부분 약물치료와 행동교정을 표준치료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은 대부분 수가문제로 손쉬운 약물 처방에만 머무르고 있다. 국내는 진료행위를 기준으로 수가를 결정하는 행위수가 시스템이라 많은 환자를 진료할수록 돈을 버는 의사 입장에선 1명의 환자를 오래 봐야 하는 행동교정 치료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를 활용하면 의사의 행동교정 치료를 앱을 통해 할 수 있다. 의사의 직접적인 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물론 약물 과다 처방에 따른 약물 오남용, 의존성 문제 등의 부작용 없이 정신질환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2017년 9월 세계 최초 디지털 치료기기로 미국 FDA의 허가를 받은 ‘페어 테라퓨틱스’의 중독 치료용 앱 ‘리셋’이 이런 경우다.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환자는 의사가 처방해준 접근 암호(엑세스 코드)로 리셋(앱)을 실행한 뒤 앱 지시에 따르면 자연스레 충동에 대한 훈련을 받게 된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고 있는 에임메드의 김수진 본부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리셋 치료는 입원 중인 약물 중독환자에게 의사가 병원에서 매일 처방하는 프로그램과 같아 사실상 의사의 인지행동치료를 앱 속에 집어넣은 것과 같다”며 “디지털 치료제는 수가 문제로 필요하지만 제대로 처방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치료를 대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회사 라이프시맨틱스가 개발하고 있는 만성 호흡기질환 재활운동 보좌 프로그램 ‘숨튼’도 저수가로 제대로 처방되지 않는 호흡재활 치료를 대신할 수 있다는 평가다.

저분자 화합물->생물제제->세포/유전자 치료제->디지털 치료제 (이미지=페어 테라퓨틱스 홈페이지)
디지털 치료제로 실시간 복용 실태 파악

또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제약사에 의약품 복용 후 환자 반응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 가령 약을 먹었는지, 먹었다면 제때에 먹었는지, 먹은 후에 몸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을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해줄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장기추적 관찰을 통한 예후관리가 중요한 암이나 뇌졸중 등 중증 만성질환에서 중요하다. 의사는 이런 정보를 이용해 더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고 제약회사는 기존 약의 개선 포인트를 포착할 수 있다. 현재는 이런 정보가 환자의 부정확한 진술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런 디지털 치료제로는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의 증상관리를 지원하는 프랑스 ‘발런티스(Voluntis)’의 ‘테라시움 온콜로지’나 국내 라이프시맨틱스의 암 환자 예후 관리 프로그램 ‘레드필케어’가 있다.

환자 예후 관리 프로그램 등 일부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다이어트나 혈당 관리 앱 등 ‘건강관리 프로그램’(웰니스)과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시험을 거쳐 효과와 안정성에 대한 입증과 허가당국의 승인을 받은 제품이다. 반면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웰니스 제품은 식약처 허가를 거치지 않는 공산품이다.

라이프시맨틱스의 디지털 치료제 숨튼 및 레드필케어


디지털 치료제, 연 평균 20% 성장...2026년 11.6조 시장

디지털 치료제는 산업적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많다는 평가다. 미국 시장조사기관(All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은 2018년 21.2억 달러(2조6000억원)에서 2026년 96.4억 달러(11조6000억원)로 연 평균 19.9%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치료제는 일반적인 기존 신약 개발보다 개발 비용과 기간, 리스크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편웅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의료산업기술사업단 교수에 따르면, 기존 의약품은 평균 3조원의 돈을 15년간 투여하는 데 비해 디지털 치료제는 200억원 안팎의 돈을 3.5~5년간 투입한다.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는 제네릭(복제약) 개발의 비용이나 기간 정도가 든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임상은 짧게는 6주, 길게는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기기’로 분류돼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 단계가 없다. 사람 대상 임상 역시 임상 1상과 2상에 해당하는 ‘탐색 임상’과 임상 3상에 해당하는 ‘확증 임상’ 두 단계만 거친다.

다국적 제약사는 의약품 시장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디지털 치료제를 주시하고 있다.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나 공동 개발에 적극적이다. 미국의 제약사 암젠과 머크는 세계 최초 게임용 디지털 치료제를 만든 ‘아킬리 인터렉티브’에 투자(시리즈 B, C)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자회사 산도즈는 ‘페어 테라퓨틱스’의 중독 치료제 리셋과 ‘리셋-O’의 시장 출시에 협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수소차로 자동차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듯 약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 지금 국내도 이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지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박사는 “세계 각국은 디지털 헬스 관련 규제 정책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디지털 치료제 시장 선점에 뛰어들고 있다”며 “디지털 치료제 급성장에 대비해 우리 산업계와 정부, 학계, 연구소, 병원도 다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어 테라퓨틱스의 중독 치료앱 리셋 환자 화면 (사진=페어 테라퓨틱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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