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힘이 되는 법)약속지킨 사람의 착각

  • 등록 2004-11-05 오전 8:53:05

    수정 2004-11-05 오전 8:53:05

[최광석] 부동산거래와 관련해서 거래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상대방의 계약불이행만 염두에 두고 정작 자신의 채무이행에 대해서는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자. 갑이라는 사람이 부동산을 매도했는데 상대방인 매수인 을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까지만 지급받고 잔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에, 일반적으로 갑은 을에게 잔금지급을 촉구하기만 할 뿐 자신의 의무인 매매대상 부동산의 이전등기서류를 준비하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갑의 입장에서는, 을로부터 돈만 제공받으면 등기서류는 당연히 준비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서류준비에는 별다른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부동산매매를 비롯한 부동산거래의 대부분에 있어 거래당사자의 의무는 법률적으로 동시에 이행되어져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위에서 예를 든 을의 잔금지급의무는 갑의 이전등기의무와 동시에 이행되어져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따질 때, 갑이 을의 잔금미지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잔금에 대한 지연이자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갑 스스로 자신의 이전등기의무를 다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사실, 즉 이전등기에 관련된 서류(매도용 인감증명서, 등기권리증 등)를 준비하였다는 것을 입증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든 갑의 경우와 같이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계약이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주관적인 판단하에, 상대방에 대한 채무만을 계속 독촉할 뿐, 갑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아니면 이행준비가 되었더라도 이행준비가 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향후에 갑이 을의 대금지급지연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재판이 진행될 때, 갑의 의무이행 역시 부족하다는 취지로 을로부터 반박을 당하게 되어, 이에 관한 입증이 곤란함으로 인해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잔금지급 이전에 중도금지급이 별도로 약정된 계약에 있어, 매수인이 잔금기일 이전에 중도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매도인으로서는 중도금을 지급받는 것 이외에는 굳이 매도인으로서 제공해야 할 다른 의무는 없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중도금지급을 독촉한 후, 이행이 없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매매계약에 있어 매도인의 이전등기의무는 잔금지급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중도금지급단계에서는 매도인에게 별다른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든 경우 이외에 자주 발생하는 사례로는 ① 계약에 하자가 있어, 이전등기 받은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이전등기를 말소해 주고, 대금을 반환받고자 할 적에 매도인에게 대금반환만 독촉할 뿐 매수인의 의무인 이전등기말소서류를 제공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여 지연이자지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말소등기서류를 제공한 때로부터 지연이자가 기산되기 때문) ②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주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임차인이 자신의 채무인 명도의무를 소홀히 한 채 임대차보증금에 대한 계약기간 이후의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차원의 연장선에서 예를 들어 매매대금을 전부 지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도인으로부터 이전등기서류를 제공받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기 위해서, 단순히 이전등기서류를 제공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 이전등기절차는 매도인의 일방적인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등기를 받을 사람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행위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 경우 매수인으로서는 매도인에게 단순히 이전등기서류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언제, 어디서 이전등기서류를 받겠다는 취지로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한, 매수인이 협조하지 않아 이전등기를 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매도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을 경우에 상대방에 대한 독촉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채무이행에 대응하는 자신의 채무는 어떤 것이 있는지 반드시 한 번 더 고민하고, 이를 이행할 준비를 갖추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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