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패권’(覇權) 입니다. 전 세계가 반도체 산업의 선두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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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본 다른 나라들도 참전했죠. 일본은 침체했던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1조3000억엔(약 13조원)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잠잠했던 유럽도 지난달 ‘유럽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430억유로(약 60조원)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데 쓰이게 됩니다.
‘新 주자’ 인도, 파격 인센티브로 기업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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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인도는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인구가 많은 데다 고급 IT 인재와 젊은 인력이 많고,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이라는 입지 조건까지 갖췄습니다. 이미 인도 내에 위치하고 있는 세트(완제품) 생산 공장도 많습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솔직히 가장 나아보이는 지역은 인도”라며 “고급 IT 인재가 많고 땅이 넓은 데다 일할 사람도 많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인도행(行)을 검토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도 있죠. 일단 대만 기업 폭스콘은 인도 기업과 손잡고 반도체 제조시설을 지었습니다. 또 TSMC는 지난해부터 인도 정부와 75억달러(약9조75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투자를 놓고 협상하고 있고, AMD와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기업도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삼성전자(005930)는 인도에 연구개발(R&D) 연구소를 짓고 시장을 살피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 벵갈루루 연구소는 해외 R&D 연구소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삼성은 이 곳에서 주로 스마트폰과 통신 장비를 중심으로 연구 중입니다.
장점은 많은데 선택이 어렵네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높고 장비, 부품 등 반도체 유관 공급망까지 갖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하면 인도의 매력은 크게 떨어집니다. 인도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시장이 2026년께 640억달러(약 8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5800억달러(약 753조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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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 관계자의 말을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하지만 미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확실한 수요와 인재, 글로벌 공급망까지 갖춘 데다 앞으로 영향력을 키우겠다고 공언한 미국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인도를 선택할 마땅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 등 국내 반도체 강자들이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일 텐데요. 사실 이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선택지는 바로 한국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인도도, 미국도, 일본도 제공하는 파격 혜택이 우리나라에서는 논의조차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