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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논을 삿갓배미라고 하는데 논을 세는 단위인 배미를 붙여 논이 삿갓만큼 작다는 의미입니다. 손바닥 만한 땅도 농지로 만들었던 조상들의 억척스럽고도 팍팍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찔한 산비탈에도 논을 붙일 정도로 땅 한평(3.3㎡)이 간절했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다도 되고 육지도 되는 갯벌이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갯벌은 땅이 아쉬운 인류에게 늘 유혹의 대상이었습니다.
갯벌을 메꿔 땅으로 만드는 간척사업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간척사업의 시작은 전쟁과 닿아 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과의 전쟁이 끝난 뒤 무신정권은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깁니다. 기마병 중심의 몽골군을 방어하는데는 육지보다 섬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강화도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량이 큰 문제가 됐습니다. 육지와 강화도 사이의 바닷길이 험해 육지에서 배로 실어 나르는 식량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때 쌀을 생산할 땅으로 눈에 띈 것이 바로 강화도에 있는 갯벌이었습니다.
당시 갯벌을 메꿔 농지로 만드는 것은 대규모 토목공사 없이도 비교적 쉽게 농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만든 논밭에서는 생산량이 두 배에 이른다고 기록에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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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민족 침입이라는 아픈 역사로 간척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민족 침입으로 뭍에서 내몰려 갯벌에 삶의 터전을 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절박한 사람들이 만든 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입니다.
우리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옮겨갔던 것처럼 베네치아 사람들은 훈족을 피해 당시 갯벌과 습지였던 베네치아로 쫓겨갑니다. 두 나라 간척의 역사가 아픈 전쟁에 뿌리를 두고 셈입니다.
그런데 베네치아로 쫓겨간 사람들은 변변한 토목기술도 없었던 1500년 전에 어떻게 지금과 같은 거대한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베네치아는 갯벌과 습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을 짓는다는 건 불가능했었지요.
고민 끝에 그들이 떠올린 방법은 물렁물렁한 갯벌에 나무말뚝을 박아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힘으로 말뚝을 박아야 했던 당시에는 깊게 박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선택한 대안은 많이 박는 것이었습니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인 산타 마리에 달라 살루테 성당을 짓는데 110만개 이상의 나무말뚝이 사용되었다고 하니 건물 바닥이 나무말뚝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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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에 쫓겨서 갈 곳 없는 절박함 때문에 베네치아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로부터 15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내몰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들을 내쫓는 건 더 이상 이민족이 아닙니다. 그들을 위협하는 건 1500년 전 이민족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줬던 바다입니다.
베네치아는 갯벌 위에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해수면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베네치아의 해수면은 도시를 처음 건설했을 때보다 1.8m나 높아졌다고 합니다.
지반침하를 가속화시켰던 지하수 사용도 금지시켰지만 베네치아는 지금도 매년 1~4mm씩 가라앉고 있습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침수를 막기 위해 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바닷물을 막기 위한 가동 둑도 만들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민족 침입을 막아주는 자연 해자 역할을 하고 먹거리와 삶의 터전을 내어주던 그 바다가 이제는 위협적인 존재로 변했습니다. 항상 내어주기만 했던 바다가 역습을 시작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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