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들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국민 연애소설 황순원의 ‘소나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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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일기예보도 비교적 잘 맞고 비를 피할 공간도 많아 예전처럼 예상치 못하게 소나기를 맞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끔 비가 올 때면 어렸을 때처럼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럴 객기도 없고, 주변 시선을 이겨낼 자신감도 없어졌습니다. 특히 비 맞으면 머리 빠진다는 걱정 때문에 빗속을 달린다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산성비 때문입니다. 식초와 황산을 연상시키는 산은 왠지 탈모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산성비를 맞으면 정말 머리가 빠질까요?
우선 의학적으로는 산성비가 탈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탈모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샴푸가 대부분 산성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산성비가 탈모를 일으킨다고 믿고 있는데 샴푸는 대부분 산성을 띠고 있습니다.
산성비는 pH가 5.67보다 낮은 비를 의미합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 내린 비의 pH는 4.4~4.9로 산성비가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산성비의 pH는 샴푸의 pH와 비슷하게 닮았습니다. 산성비를 맞았을 때 두피에 미치는 산의 영향은 샴푸로 머리를 감을 때와 비슷한 셈입니다.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매일 샴푸로 머리를 감는 사람은 모두 대머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오랫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는 겁니다. 이 말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을까요? 기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우산업체와 환경단체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특히 남자들이 우산을 잘 쓰지 않는데요. 이는 우산을 쓰고 다니면 왠지 약해 보이거나 샌님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폭우가 내리면 우산을 쓰지만 그렇지 않은 비에 우산을 쓰면 유난을 떤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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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18세기에 우산이 대중화되었지만 지금도 어지간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우산을 만드는 업체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산을 쓰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고민 끝에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식으로 약간의 겁을 줘 우산을 쓰게 했다는 설입니다.
다른 설은 환경운동 차원에서 유래됐다는 것입니다. 환경 운동가들이 시민들에게 산성비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고 했다는 주장이지요.
산성비는 다른 환경오염과 달리 우리가 쉽게 느끼지 못하고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칫 산성비의 피해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경고를 주기 위해 탈모라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제기했다는 설입니다.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말은 알고 봤더니 의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속설이었네요. 속설의 기원이 환경운동이든 우산 판촉이든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빗속을 마음껏 뛰어다녀도 머리카락이 빠질 염려가 없다는 것이죠. 가끔 일상이 답답해질 때, 그리고 운좋게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탈모에 대한 걱정 없이 빗속을 마음껏 뛰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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