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패기·역동성·신선함으로 무장… 몸으로 풀어낸 4人4色 파노라마

심사위원 리뷰
현대무용단 탐 '네 개의 이미지'
젊은 무용가들만의 안무 스타일 살려
황희상, 마스크 오브제로 활용하는 등
독특한 발상의 전환 유튜브로 생중계
  • 등록 2020-10-08 오전 6:00:00

    수정 2020-10-08 오전 6:00:00

[장지원 무용평론가]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현대무용단 탐(예술감독 조은미)이 지난 9월 3일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젊은 무용수 젊은 안무가전 ‘네 개의 이미지’ 공연을 유튜브 생중계로 가졌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젊은 무용수 젊은 안무가 공연은 젊은 세대 무용가들의 가능성과 그들만의 안무스타일을 소그룹 창작을 통해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 이번에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무관중으로 생중계를 통해 진행되었고, 제목처럼 네 작품이 각자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냈다. 또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오히려 마스크를 오브제로 활용해 독특한 발상의 전환을 도모하기도 했다. 마스크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갖고 무대를 확장시키며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형식이 이채롭다. 4개의 작품은 조양희의 ‘Hommage’와 최효련의 ‘평면을 걷다’, 황희상의 ‘Than’과 마승연의 ‘우연한 공간’이었다. 특별히 40년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무대에서 신구세대가 함께 하며 단체의 저력을 과시했다.

조양희의 ‘Hommage’(사진=현대무용단 탐)
조양희의 ‘Hommage’는 빨간색 천이 덮여진 단 위 붉은 고무판들에 앉아 검은 원피스를 입어 강한 시각적 자극을 주는 솔로로 시작된다. 적막 속에서 긴 팔로 머리 쓰다듬기, 자신의 몸을 쓸어내리기, 다양한 손끝의 사용 등 특유의 해체된 움직임이 수반되고 이내 마스크를 벗는다. ‘예스’를 외친 그녀는 탑조명 속에서 벗어났고 피아노 선율에 맞춰 단 위에 쌓인 빨간 사각 고무판들을 사선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곧 조양희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시원하면서도 분절적인 몸짓으로 과거 탐 무용단의 여러 작품에 나왔던 움직임 어휘들을 오마주하고 있었다. 대표작들을 한눈에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춤은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을 보는 것처럼 아련한 추억의 잔상을 남겼다. 시간의 흐름, 연장을 의미하는 사선 세로 줄 조명 속 붉은 판들은 기억의 파편들로 하나의 상징 또는 은유였다. 사각의 무빙라이트도 감각적이었고, 백드롭의 희뿌연 이미지는 흐리한 기억처럼 다가왔다. 그녀의 현란한 솔로와 뛰어난 표현력은 큰 무대를 채우기에 충분했고, 이제는 굳이 기량을 과시하지 않아도 카리스마와 연륜으로 판단을 유보했다.

최효련의 ‘평면을 걷다’(사진=현대무용단 탐)
최효련의 ‘평면을 걷다’는 가장 어린 안무가로서, 능숙함보다는 패기와 역동성이 느껴졌다. 끝없이 평평하게 펼쳐지는 세상 속에서 평면의 의미는 늘 반복되고 그대로 나타나는 형태이지만,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대화를 꿈꾸는 안무가는 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삼각형 조명 안에 흰 플로어 안에서 푸른 의상의 최효련, 차은비가 피아노와 디지털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 속에서 반짝이 마스크를 마치 하나의 의상처럼 쓰고 등장했다. 최효련은 탄탄한 하체 힘에 기반한 힘 있는 동작으로 리드하며 둘의 듀엣을 펼쳤다. 전통 누비 조각보 같은 화려한 푸대를 오브제로 사용하며 동일 움직임의 반복은 미니멀한 음악에 힘을 더했고, 젊은 무용수들의 에너지를 과시했다. 바닥의 녹색 조명과 서정적인 음악,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과거 탐의 많은 어휘들이 엿보였다. 푸대의 활용, 백드롭 숲과 나무, 길의 이미지를 사용한 영상이 조화를 이루며 기억에 남는다. 가장 어린 안무가로서 후속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움직임 어휘와 색깔을 완성하는데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황희상의 ‘Than’(사진=현대무용단 탐)
황희상의 ‘Than’은 주제 면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꿈꾸며 출발했다. 앞선 작품의 마스크들을 가로로 연결시켜 ㄱ자를 이루면서 하수 기계와 황희상을 비추는 앰버 조명이 고풍스러운 감성을 전했다. 탑 조명 속 허은금과 장근영의 듀엣은 여성적이다. 이국적인 음악에 맞춰 춤출 때 황희상은 지속적으로 비추는 한줄기 빛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스크를 벗고 그 속의 또 다른 색상의 마스크를 보이는 행동은 감춰진 이면을 나타내며 이때의 가면이란 패션 소품이나 경극 가면처럼 쓰였다. 곳곳을 비추는 얇은 팔로우 조명과 세 사람의 엮임과 풀림이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른 묘미였지만 움직임이 유사해 유니크함이 요구되었다. 사각으로 분절된 바닥조명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임에 강도를 더했고, 황희상의 작품들 중에서 분위기나 이미지가 가장 완성도를 갖췄다. 마지막 바닥에 ㄱ자로 놓인 종이를 쭉 따르는 팔로우 작은 조명들이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살렸고 그녀의 적정기준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트리오와 여성적 이미지, 감각적이고 화려한 조명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었다.

마승연의 ‘우연한 공간’(사진=현대무용단 탐)
마승연의 ‘우연한 공간’은 이질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고 섞이면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공간을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녔다. 그녀는 앞 작품의 ㄱ자 공간을 ㅁ자 공간으로 완성했고, 2개의 마네킹과 함께 긴 의자에 앉은 4명의 무용수(마승연·최윤영·김미솔·이혜지)들이 펼치는 행위들(분무기로 물 뿌리기, 앉은 배열 바꾸기 등)이 색다른 분위기를 조성했다. 안무자는 많은 작품을 안무한 만큼 역시나 공간을 구성하고 움직임을 조합하는 부분에서 노련미가 돋보였고, 유사하면서도 다른 특질의 움직임의 변용은 어휘의 다양성 부분에서도 우수했다. 4인무를 통해 전체 구조가 확연히 드러났고, 마네킹으로 6명의 이미지를 만든 것도 효과적인 미장센이었다. 무용수들의 뛰어난 테크닉, 보는 이의 각도를 바꾸며 도모한 시점의 변화, 안무가의 나이를 잊게 하는 역동성 등이 관람 포인트였다. 후반부 샹송 풍의 음악이 너무 강하고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으나 후반부 춤 부분을 뒤에 그림자로 같이 처리한 이미지가 이를 상쇄했다. 결국 마지막 바닥에 놓여있던 마스크 더미들 속에서 마스크를 들었다 놓는 행위에 의미를 더하며 추상적 주제를 밀도 있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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