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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명의의 대포통장이 사기사건에 연루됐으니 처벌을 피하려면 돈을 찾아 자신들에게 맡기라”는 전화였다. 전형적인 ‘정부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이다.
지난 3월에도 서너차례 비슷한 전화를 받았던 정씨는 학원 근처에 있는 동작 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전화를 끊지 말고 A씨가 시키는 대로 따라달라고 요청했다.
범인들을 잡기 위해 속은 척 연기를 하기로 결심한 정씨는 경찰의 ‘그림자 경호’를 받으며 통장에 있던 1680만원을 찾아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로 나갔다. 정씨를 밀착 마크 하며 현장에 동행했던 경찰은 정씨가 나타나자 모습을 드러낸 금감원 사칭 보이스피싱 수금책 박모(18)씨를 초등학교 현장에서 붙잡았다.
A씨는 이런 상황을 모르는듯 정씨의 나머지 838만원마저 찾아 대방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다른 금감원 사칭 수금책 김씨(23)에게 넘기라고 했다. 정씨는 “알았다”며 계속 보이스피싱 사기에 속은 척 위장했다.
정씨와 통화를 하던 A씨도 갑자기 돈을 넘겨받을 장소를 대방역에서 용산의 모 초등학교로 바꾸겠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장소변경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정씨는 침착했다. 일단 A씨와 통화를 하면서 문자로 서둘러 경찰에게 ‘접선 장소’ 변경을 알렸다. 주위를 배회하던 김씨가 수상하다는 사인도 전했다. 그리고 범인의 지시에 따라 택시를 탔지만 “차가 막힌다”는 등의 핑계로 경찰이 따라붙을 시간을 벌면서 용산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장소 변경으로 잠시 정씨와 떨어진 경찰은 곧바로 정씨의 기지에 힘입어 보이스피싱 조직원 김씨를 붙잡았다. 정씨 주위를 배회하던 김씨를 불심검문 한 결과 가방에서 금감원 명의의 위조 서류가 나왔다.
이렇게 경찰은 정씨 도움을 받아 이날 오후 3시 반무렵까지 현장 3곳을 돌며 보이스피싱 수금책 4명을 검거했다.
경찰은 이 중 박씨, 김씨, 홍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강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한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고 16일 밝혔다.
이 중 김씨는 다른 보이스피싱 사기 건으로 4152만원을 이미 빼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조금 무서웠지만 미래 경찰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비슷한 전화가 계속 걸려와 기회가 되면 꼭 범인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동작서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의심 전화를 받으면 끊지만 말고 경찰에 신고를 해주면 검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했다. 경찰은 정씨에게 감사장을 수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