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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영 대표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은 그가 어떻게 발상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저곳 프라 모델이 널려 있다. 그는 디자인을 좋아한다. 대형 TV 앞에 DVD가 놓여 있다. 그는 영화를 좋아한다. 책장 한쪽에는 온갖 종이뭉치가 쌓여 있다. 그는 책보다 짧은 글 모음을 즐긴다. 한 쪽 벽면에는 뭔가 적은 포스트잇 수 십장이 널브러져 있다. 그는 글쓰기에 능숙하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은 다르게, 남들이 안 하는 일은 새롭게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하면 다르다’, 이런 게 좋잖아요. 똑같이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사무실에서 고민하는 것도, 어떻게 할까 이런 게 많아요.“
여준영 대표의 업무 스타일은 마치 산책하는 것 같다.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아니다. 예쁜 꽃을 만나면 잠시 감상도 하다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천천히 어느 곳을 향해 걷는다. ‘PR’과 ‘Brain’을 조합해 PR 그룹 ‘프레인(Prain)’을 창업했을 때도 성공을 위해 달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르게 남보다 뛰어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고민을 ‘헌트(Hunt)’라는 제목의 블로그에 몇 해 동안 남기고 있고, 그 안에 담긴 글들은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준비~ 시작! 전 이런 스타일은 아니예요. 어떤 일을 할 때면 생각하다가 사람을 만나다 토론을 하다, 시간을 두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과 생활이 섞여버리고 말았어요. 거의 매시간 일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여준영 대표는 PR 컨설턴트 분야에서 유명인이다. 2000년 중고 컴퓨터와 직원 2명으로 시작해 불과 5년 만에 국내 업계 1위에 올라섰고, 현재는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60위 권(홈즈리포트 기준)로 키워냈다. 현재 PR 그룹 프레인을 시작으로 디지털에이전시 마커스, PR전문사 트레이, 컨설팅기업 PCG, PR연구소 프레인앤리 등을 이끌고 있다.
”20대 때는 동료 직원보다 10만원 더 받는 샐러리맨이되겠다는 목표로 일했어요. 30대에 창업을 했을 때는 회사 동료들이 잘되는 게 목표였고요. 구체적인 목표를 갖는 삶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준영 대표는 PR그룹을 이끄는 기업인만큼 감각 유지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2030 세대’의 고민이 무엇이고 관심사가 무엇인지 내내 살펴본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많은 이의 공감을 받는 이유도, 젊은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PR를 하는 사람이 특정 세대의 마인드, 라이프스타일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PR 컨설턴트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
”거의 몇 해 동안 일만 해온 거 같아요. 해외에 가더라도 여행이 아니라 결국 일 때문이었거든요. 낮에 일할 때도 있고, 밤에만 일할 때도 있어요. 페이스북 친구들이 한밤중에도 사람들을 만나니 언제 잠을 자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잠을 나눠서 자서 그렇지 웬만한 분들만큼 자는 것 같아요.“
여준영 대표는 프레인의 업무를 크게 둘로 나눠 PR 분야외에 신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티스트집단 스티키몬스터랩과 가구회사 매터앤드매터에 투자한 데 이어 프레인 안에 외식사업부 퓨어아레나, 영화 ‘50/50’, ‘잉투기’ 등을 론칭한 프레인무비, 류승룡 김무열 문정희 오상진 문지애 등 10여 명의 스타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프레인TPC 등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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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제주도에 자주 다니는데, 뭐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제가 그렇다고 흑돼지나 먹으러 다니는 것은 아니에요. 사무실에서 몇 달 동안 밤마다 영화만 보니 ‘저 사람이 뭐하나’ 그랬었죠. 그 결과가 몇 해 만에 영화 분야로 꽃을 피웠죠. 아마 1, 2년 안에 제주도와 연관된 또 하나 재밌는 일이 만들어질 거예요.“
◇ 여준영 대표는…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고, 1999년에서 2000년까지 홍익인터넷 CMO로 전직했다. 2000년 PR 기업인 프레인을 창업했고, 현재 다섯 개의 PR 관련 기업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각종 콘텐츠에 관심을 쏟으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