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신혜기자]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이 아시아 소비자물가를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수개월내에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이 12일 보도했다.
신문은 과거 세계 경제 침체기동안 아시아내 물가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하락세를 보여왔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아시아 경제도 발동이 걸리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태국,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인플레가 가속화될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2002년까지만해도 인플레이션률이 0.7%에 그쳤던 태국에서는 3월중 소비자물가지수가 2.3% 올라 33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필리핀에서도 3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기 대비 3.8% 올라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초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해 일부 가전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전세계 원자재를 싹쓸이하며 원자재 대란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중국도 상황이 심각하다. 2월 들어 약간 완화되긴 했지만 중국 물가상승률은 1월중 3.2% 급등해 이코노미스트들을 긴장시켰다.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지역 이코노미스트인 롭 서바라만은 "전반적인 인플레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아시아가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같은 아시아내 물가 상승 압력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부 서구 제조업체의 경우 모든 제품을 아시아에서 생산, 다른 국가로 수출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에서의 물가 상승은 곧바로 다른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완제품이 아닌 부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업체들이 아시아에서 제조되는 부품을 사용할 경우 아시아내 물가 상승으로 부품 가격이 오르면 미국 업체들은 완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99년 대만 반도체 업체들이 지진 여파로 D램 공급에 차질을 빚자 델을 비롯한 미국 PC 업체들은 D램 가격 상승분을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했다.
아직 대부분의 미국과 아시아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인상시키기를 꺼려하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이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더 이상 가격 인상을 지연시킬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최근 소니는 2002년 7달러에 그쳤던 코발트 가격이 올들어 25달러로 급격하게 상승하자 리듐 배터리 가격을 평균 10% 인상했다.
고무 가격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타이어업계도 마찬가지. 최근 한국의 금호타이어는 타이어 수출가격을 3∼5% 인상했고 미쉐린 역시 타이어 가격을 최대 5% 올렸다. 고무가격은 지난18개월동안 65%나 상승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달러 약세는 이미 미국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지난 3개월동안 연율 3.7% 상승했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2월중 소비재 가격도 18개월만에 처음으로 전월비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 버난케 FRB 이사는 과거에도 원자재 가격이 이처럼 상승했던 적이 있지만 소비자 물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며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저 퍼거슨 부의장 역시 일부 상품 가격이 상승했지만 소비자물가는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인플레 압력이 수개월내에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원자재 가격이 완제품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인플레를 경고하는 애널리스트들은 미국이 저임금을 찾아 아시아로 공장을 옮기고 있는 지금 원자재 비용 상승이 완재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외로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호주의 가전제품 제조협회의 빌 로버트슨 이사도 노동비용의 경우 호주 가전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20%에 그치는 반면 알루미늄, 철강 등 원자재 비중은 35%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업계에 오랜 기간 있었지만 최근처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은 처음이라며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는 모터 가격 인상으로 조만간 가전제품 가격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클레이캐피탈의 핸리 윌모어 이코노미스트도 앞으로 1년내 아시아 주도의 인플레이션이 미국으로 수출될 가능성이 50% 이상이나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부분의 인플레이션 촉진 요인이 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FRB와 미국 정부 당국이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원자재 가격 상승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