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사고가 발생한 평택 냉동창고 공사현장은 대형화재 발생 위험이 크지만 소방 관련 법령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가연성 물질이 있는 곳에서 용접 등 불꽃이 튀는 작업을 할 땐 화재감시자를 배치하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작업할 땐 소화기 등이 갖춰져 있으면 화재감시자를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조항을 둬 허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을 악용한 사업자가 안전관리를 해야 할 사람 대신 소화기만 배치하는 경우가 잦다.
대다수 물류센터는 불에 타기 쉬운 가연성·유독성 물품으로 가득하다. 물류창고는 일반 건물보다 더 많은 양의 단열재가 들어가는데 화재 발생 시 이런 단열재는 화재 진압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공사 중인 물류·냉동창고는 완성된 건물도 아니어서 소방·건축법이 정한 소방시설, 화재 안전에 관련한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공사장의 화재 관리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고 완공 단계에서는 건설교통부의 건축법의 규제를 받고 있어 공사장 화재 안전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실제로 지난해 4월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도 당시 시공사는 용접작업을 하면서도 기본적인 안전조치뿐 아니라 화재감시자도 배치하지 않았다. 이천 화재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재예방법)’이 올해 12월부터 시행한다. 화재예방법에는 일정 규모 이상 공사 현장에는 소방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소방안전관리자는 공사 현장의 소방시설을 관리하고 용접 등 화기 취급도 감독하고 관리한다. 다만 아직 시행 전이라 현장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어 제대로 된 건설현장의 소방안전관리자 선임과 관리가 미비하다.
건설현장에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해 관할 소방본부장·서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데 규정을 강화해 적극적인 소방안전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소방안전관리자에게 구체적인 권한과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건설사의 월급을 받는 관리자가 제 역할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12월 법 시행 전에라도 타 부처 관할 법령까지 종합적으로 정비해 대형 화재 예방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소방청은 평택 공사장 화재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개최하고 물류창고 공사장 등 대형 화재 가능성이 큰 시설에 대해 소방관계 법령뿐 아니라 건축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관련 규정까지 모두 정비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용재 교수는 “규제의 효율성 문제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부처 간 차이를 떠나서 현장의 안전관리를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동조합’(소방노조)는 “반복되는 무리한 진압 명령으로 또 동료를 잃었다”면서 “내부에 사람이 있었나, 위험물이 있었나. 왜 우리 동료는 목숨을 잃어야 했느냐”며 현장 지휘부를 비판했다. 소방청은 이번 평택 물류창고 화재로 현장지휘관의 역량과 소방대원의 대응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을 새로 도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인사 운영 시스템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재발화된 불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수많은 변수가 넘치는 화재 현장의 대응방법을 매뉴얼화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며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소방관이 좀 더 안전을 확보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제반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로봇이나 드론 등 첨단 장비를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방노조는 “순직 사고를 막기 위해 현장 상황에 맞는 화재 진압 매뉴얼 개정, 화재진압·웨어러블(착용형) 로봇 도입 등을 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드론이나 로봇의 현장 투입이 현재 기술이나 환경에선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소방청은 대형화재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 탑재 소방장비, 로봇이나 드론과 같은 장비 도입에도 서두르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