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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A씨는 하루 하루 속이 탄다. 2주택자인 그는 세를 놓은 집을 빨리 팔아야 내년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폭탄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세입자가 있는 집은 선호도가 떨어져 석달 째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처지다.
인근 중개사무소에 따르면 세입자가 있는 집의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는 집주인이 살고 있는 집보다 1억원 정도 낮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면적 85㎡의 경우 현재 매도 호가는 27억~30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S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용 85㎡짜리 중에서도 내년 초 전세 만기가 도래하는 매매 물건의 경우 27억5000만원인데, 비슷한 매물이지만 바로 입주가 가능한 곳은 29억원에 시장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입자들은 현재의 전세보증금 수준으로 2년 더 살려고 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기지 않는다”며 “일단 본인(집주인)이 입주한 뒤 몇달 뒤 전셋값을 올려 내놓는게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단지 내 위치와 층수, 집 상태 등에 따라 가격 차가 발생하지만 최근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 2+2년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이후 세입자 유무 역시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기존 세입자가 전 주인과 이미 계약갱신에 합의한 경우, 새로운 주인의 입주는 불가능하다고 해석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직접 거주 계획을 갖고 있는 매수자의 경우 ‘임대차 계약 만료 6개월 전인 매물’을 매입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하고 6개월을 기다리거나 아예 세입자가 없는 매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의왕 집을 팔기 위해 계약까지 마쳤지만, 세입자가 나가지 않아 계약이 취소될 위기에 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직접 거주하지 않더라도 세입자가 없는 매물을 사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전월세상한제에 따라 기존 세입자와 계약갱신시 최대 5%까지 올릴 수 없는 반면 신규 세입자는 이 같은 법에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예 세입자가 없는 매물을 사서 신규 세입자를 구하는 편이 나은 셈이다.
반포자이 85㎡의 경우 현재 전세가격은 15억원대 정도다. 하지만 기존 전세계약을 갱신할 경우 많이 받아봤자 12억원대라는 게 인근 중개사무소의 전언이다.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역시 85㎡ 신규 전세매물은 9억원대에 나와있는 반면 계약갱신은 5억원대에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세입자가 낀 매물의 경우 새롭게 재편된 현 시장 상황에서 여러 제약이 많아 입주 가능한 매물보다 가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임대차법은 기존 전세계약갱신으로 전체 시장내 매물 잠김을 심화시키면서 세입자 뿐만 아니라 실거주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